[소설]8월의저편 407…낙원으로(24)

  • 입력 2003년 8월 31일 17시 30분


코멘트
“전몰 영령을 위해 1분간 묵도를 올린 후, 표창을 한다. 위 사람은 1943년 8월 8일, 황군 위안에 온 힘을 기울여 최고의 매출을 올렸으며 전 위안부의 모범이 되었는 바, 이에 그 공적을 표창한다고 표창장을 읽고, 부상도 수여한다. 표창은 2위, 3위까지다. 입상을 못한 자에게도 과자를 배급하여 수고를 위로하니까, 너희들도 언니들과 함께 절차탁마하거라.

속바지나 간편복이 더러워지면 새로 지급하지만, 너희들은 하루 종일 잠옷차림 일 테니까, 그리 더러워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속바지 입고 있을 틈이 있으면 표창은 물 건너 간 거니까. 빨랫비누, 세숫비누, 칫솔, 치약, 거즈, 솜, 연지, 분, 과자, 담배가 부족하거든 나한테 말해라. 내가 조달해 주고 빚으로 달아 놓겠다. 너희들 빚은 고하나가 300엔, 나미코가 350엔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빚을 갚을 때까지 너희들 몫은 없다.”

“빚?” 고하나는 나미코의 등에 손을 두른 채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너희들 여기까지 데리고 오는 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는 줄 알아?”

“빚 같은 거 없어요! 300엔이라니, 그렇게 큰 돈 본 적도 없다고요!”

아버지는 고하나의 얼굴에 불붙은 담배를 던졌다.

“앗, 뜨거!” 고하나는 이마를 눌렀다.

“이 계집이! 조센진 주제에 웬 말이 그렇게 많아! 그 온돌짝에 지진 멍청한 머리로 생각해 보라고. 너희들 데리고 온 알선업자들한테 우리 군이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했는지 알기나 하고 하는 소리야. 기차삯에, 뱃삯, 여관비, 식비, 하기야 너희들 머리로는 계산도 안 되겠지! 날 우습게 보지마! 어이, 나미코, 언제까지 그렇게 훌쩍거리고 있을 거야! 얻어맞아야 알겠어! 얼른얼른 몸 씻고 준비해!”

아버지가 의자를 걷어찼다. 의자는 나미코를 안고 있는 고하나의 등에 부딪쳤다. 하지만 고하나는 신음소리 하나 뱉지 않고 나미코를 껴안은 채 방을 나왔다.

낙원이 지나 사람들의 소유였을 때 취사장으로 쓰였던 토방에 커다란 항아리가 두 개 놓여 있었다. 조선 항아리하고는 좀 다른, 갈색에 광택이 있는 도기 물항아리였다. 고하나는 항아리를 기울여 남은 물을 버리고, 냄비에 물을 끓여서 항아리에 붓고 찬물을 섞어 손바닥으로 휘휘 저었다. 자, 깨끗하게 씻자, 고하나가 말하자 나미코는 오른발, 왼발을 항아리 속에 집어넣고 아랫입술까지 천천히 몸을 물에 담갔다.

글 유미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