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근은 강둑을 뛰어내려가 강에 입을 대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물로 얼굴을 탁탁 두드렸다. 밤에 자지 않고 달리려니 힘들다. 신웅에게서 빌린 책을 베껴 쓰다 보니 첫닭이 울 시간이 되고 말았다. 세계란 물질이 운동하는 모습이며, 물질이 사유하는 모습이다. 우근은 러닝셔츠를 벗고 갓 싹이 튼 부드러운 풀밭 위에 사지를 쭉 뻗고 누웠다. 여기서라도 잠시 눈을 붙이고 싶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말이 아우성대는 통에 잘 수가 없다. 쓴 것은 읽은 것과 달라서 그대로 송두리째 눈앞에 떠오른다. 세계, 만물로 성립된 일자(一者)는 신이 창조한 것도 인간이 창조한 것도 아니고, 과거 현재 미래 영겁에 걸쳐 영원히 살아 있는 불이며, 합법적으로 타올라 합법적으로 꺼지는 불이다. 우근은 눈을 떴다. 하늘. 파랑, 한 차례 비라도 쏟아지면 흘러가버릴 듯한 엷은 파랑. 풀의 파랑도 물의 파랑도 아직은 엷다. 하지만 곧 여름으로 흘러들어 짙은 파랑으로 바뀌리라. 솔 솔 살랑살랑, 바람이 움튼 나뭇잎을 쓰다듬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세게 휘몰아쳐도 가을 낙엽처럼 떨어지는 일은 없다. 봄은 부드럽고 젊다. 그리고 다른 어느 계절보다 강하다. 춘식. 형이 지어준 이름에 봄 춘 자가 있는 까닭인가, 봄이 되면 창문이란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모든 것을 내다보고 싶어진다. 변증적 방법에서 범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발생하고 발전하는 것뿐이다. 우근은 윗몸을 일으키고 두 손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마치 하늘에 닿고 싶기라도 한 듯. 발전의 과정은 지나간 것을 단순 반복하는 순환 운동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향상선을 그리는 전진 운동으로, 낡은 질적 상태에서 새로운 질적 상태로 이행하고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우근은 아침 햇살을 반사하며 은화처럼 반짝이는 밀양강과 강과 나란히 구불구불 나 있는 돌길을 바라보았다. 부유한 자와 빈곤한 자,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 전권을 휘두르는 자와 아무런 권리도 없는 자. 내게 부족한 것은 분명하다. 각오. 아니, 중압감이 필요하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중압감이 있다면, 목적의식이 손끝까지 차오를 텐데. 모든 착취를 절멸하고, 모든 착취자 압박자의 소멸을 목적으로 한다. 우근은 부르르 몸을 떨고 발과 목을 옥죄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쇠고랑을 철그럭철그럭 끌면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하고 허벅지를 들어올리는 연습을 하고, 팔굽혀펴기와 복근운동을 200번씩, 그리고 가슴을 쫙 펴고, 큐우, 다시 오므리고, 파아,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발전이란 대립의 투쟁이다. 큐우, 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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