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냥 여기 있을 거예요. 내일 오후에 차를 불러서 부산까지 짐을 실어 나르기로 했는데, 그때까지는 여기 있을 겁니다. 여기는 나하고 당신 집이잖아요. 기와는 긴 한숨을 몰아쉬면서 툇마루에 놓인 네 개의 고리짝을 바라보았다. 이것들만 가지고 갑니다, 여보, 시집올 때 가지고 온 오동나무 서랍장도, 예복도, 경대도, 모두 두고 가야 한답니다…다쓰지는, 관부연락선을 타려면 손에 들 수 있는 짐만 가져가야 하니까, 부산에서 여관에 묵으며 밀항선이 떠나기를 기다리자고 하는데…이 나이에 힘든 뱃길을 견딜 수 있을지…너무 오래 살았나 봅니다, 여보…일본이 이렇게 질 줄 알았더라면 대들보에 목을 매서라도 죽었을 겁니다. 뼈가 되어 당신하고 같이 돌아가는 편이 훨씬 편할 테니까…여보, 당신 내가 몇 살이나 된 줄 아세요? 지난 3월에 여든여덟 살 생일을 맞았습니다…여든여덟 살…당신하고 둘이서 시모노세키에서 사쓰마호를 탔을 때가, 그러니까 당신은 쉰아홉에 나는 쉰일곱이었으니, 벌써 30년 전 일입니다. 당신 한번도 고향에 돌아가 보지 못하고 먼저 가셨죠…나도 이 땅에 뼈를 묻으려 했는데…어쩌다 일이 이렇게….
8월 15일까지 나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아들 하나에 손자 넷, 증손은 열여덟이나 보았고…3000이나 되는 아이를 이 손으로 받고…내지에서 받은 아이보다 여기서 받은 아이가 훨씬 많습니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지팡이 없이 두 발로 잘 걷고, 눈도 잘 보이고, 귀도 잘 들립니다. 지난달에는 성내까지 인력거를 타고 가서 쌍둥이를 받았습니다. 사내아이하고 여자아이하고, 산부는 조선사람이었어요.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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