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98…목격자 (14)

  • 입력 2004년 2월 10일 19시 49분


<공산당 선언> 표지는 두 가지 색이었는데…빨강하고…파랑…아니 초록이었나…아, 아이고 졸려…어제 아침부터 한숨도 못 잤는데…잠시만이라도 눈을 좀 붙일 수 있게 해 주십시오…아, 차가! 아, 아, 아이고…아이고…이우근이요?…아아, 네…이춘식 선배말이로군요…에에, 같습니다…밀양 사람에 경남상고 육상부…나는 2층 205호실이고, 이춘식 선배는 1층 102호실입니다…아니오, 기숙사비를 안 내는 대신, 집에서 쌀을 부쳐줍니다…열다섯 돼요…하지만 이춘식 선배는 특별 면제입니다…물론 김재근 교장선생님의 재량이죠, 교장선생님의 고향집이 정미소라서, 아, 알고 계시죠? 구포에 있는 커다란…그야 물론, 이춘식이니까 그렇죠, 기숙사에서 쌀을 안 내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니까요…달리기를 잘해서죠! 800미터하고 1500미터에 틀림없이 출전하겠죠, 다음 올림픽 때 말입니다. 머리도 아주 좋고요. 공부도 별로 안 하는데 모든 과목이 수 아니면 우입니다. 동국대학교하고 강릉사범학교에서 벌써부터 고등학교 졸업하면 자기네 학교로 오라고 그런답니다. 우리 경남상고의 자랑, 아니 영웅이죠…네에, 영웅이고말고요! 얼마나 센지는 말로 다 못합니다. 주특기는 이단옆차기죠. 이춘식 선배는 반드시 벽에 기대어 섭니다. 적이 아무리 많아도, 벽을 등지고 있으면 뒤하고 좌우에서는 덤빌 수가 없잖습니까? 그리고, 다가오면 오른발을 내디디고, 왼발로 땅을 차면서 오른발로 날아올라, 공중에서 왼발로 얍! 다시 왼발을 거둬들이면서 이번에는 오른발로 얍! 그렇게 적을 걷어차고는 그 빠른 발로 타다다닥! 그러니까, 아무도 당해내지 못한다는 겁니다, 당할 자가 없지요…적이요? 적이란 그러니까…전국학련 놈들이죠.

난 이춘식 선배보다 세 살 아랩니다. 밀양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매일 아침 스치고 지났죠. 만날 때마다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춘식 선배가 달리는 모습 본 적 있습니까? 남자인 나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멋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선배를 동경해서 밀양강 강둑을 달리기 시작했고, 선배하고 같이 달리고 싶어서 경남상고 육상부에 들어간 겁니다…네, 민애청에 들어간 것도 선배 때문이었죠…서대신동 공터에서 선배의 연설을 들었습니다…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나도 같이 외치고 있더라고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하고 말이죠.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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