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514회…셔플 X 운명의 고리 (1)

  • 입력 2004년 3월 1일 19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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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리 연재 소설

8월의 저편 514 회

셔플 X 운명의 고리 (1)

우철의 동생 우근은 부산의 경남상고 학생이며 좌익운동의 리더였다. 1948년 8월, 경찰관이 학교 앞에서 리볼버로 우근을 조준한다. 우근은 도망치지만 담을 뛰어넘으면서 총탄에 맞는다. 우근은 다른 정치범과 함께 산 속으로 연행되어 스스로 판 무덤에 생매장된다.

쇠창살이 끼여 있는 창으로 비치는 저녁 햇살에 두 죄수의 얼굴이 잠시 붉게 물들었다. 두 남자는 무릎을 껴안고 천장에 닿을 듯 높이 나 있는 조그만 창을 올려다보면서, 중얼거리듯 얘기하고 있다.

“2시간25분39초…대회신…서윤복…보스턴마라톤 우승….”

“그때는 정말 굉장했죠…호외까지 뿌리고…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에서 우승을 했을 때처럼…3년 전이었나요…벌써 광복된 지도 5년이니까…아이고, 참 세월 빠르다…너무 빨 라….”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그렇겠지…여운형이 암살당하고…자네 사촌이 김구, 김규식 선생하고 평양으로 간 뒤…그대로….”

“김일성과 북조선인민공화국 건설에 참가, 국가검열상에 취임…자네는 북으로 가면 도지사 정도는 문제없을 거라고들 했죠, 하하하하…이렇게 목숨이 붙어 있으니 기적입니다…사촌동생 네 명도 전부….”

“아이고, 김원봉하고 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아이고, 이 망할 놈의 세상….”

두 죄수는 얼굴을 마주보지는 않았다. 이제 곧 서편으로 저물어버릴 태양의 빛을 조금이라도 더 쬐고 싶어서였다. 둥지로 돌아가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감방 안에도 울렸지만, 네 개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둘 다 오래도록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데, 엉덩이와 허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있다.

“아이고, 이럴 수가…다 틀렸어…다, 아이고.” 젊은 남자가 고개를 흔들며 피가 눌러 붙은 몸을 핥고는 새빨간 가래를 뱉었다.

“함기용 2시간32분39초…송길윤 2시간35분18초…최윤칠, 2시간39분45초…올 보스턴마라톤에서는 1위에서 3위까지 독점….”

“조선 올림픽대회 5000m에서 우승하지 않았습니까?"

“아이고, 벌써 3년 전 일이야…달린다…뭘 위해서….”

“그래도 당신은 달려야 하는 사람입니다.”

글 유미리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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