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몰라요…죽은 네 명의 사촌들도 아무것도 모르고…큰아버지도 큰어머니도….”
“지금쯤 어쩌고 있을까…자택에서 쫓겨나 삼문동에 있는 다 쓰러져가는 집으로 옮겼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는데….”
“굶어죽기 직전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드나들다가 들키면 밀고를 당할 게 뻔하니까, 친척인 우리들도 목숨을 걸고 보러 갔습니다…그래도 깊은 밤에 보리나 쌀을 갖다 줍니다.”
“아이고, 부모 형제들이 무슨 고생을 하고 있는지 김원봉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겠지.”
“그래도 상상이야 할 수 있겠지요…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전쟁이니까요…나는 김원봉과 친척이라는 것을 원망하거나 저주하고 슬퍼하지 않습니다…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해방된 지 5년 만에 남북이 갈라질 줄이야…왜 일본이 아니랍니까? 왜 미국과 소련, 영국은 일본을 갈라놓지 않고 우리나라를 그랬답니까? 일본을 갈라놓아야 마땅하죠. 패전국 아닙니까! 왜 우리나라가 전쟁터가 돼야 한단 말입니까?”
“…보도연맹은 다들 개죽음이야…우리를 전향시킨 놈들이 우리의 전향을 의심하고 있으니…북군이 남하하면 우리들이 북군에 가담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지 않은가…북군은 어디쯤 와 있을까?”
“바로 근처에 와 있습니다…어제 놈들의 안색이 아주 수상했어요…긴장하고 있는 눈치더라고요…그리고 조용하잖아요?”
“…그래, 조용해…저녁 때 보리밥 갖다 주고는 한 번도 보러 오지 않고….”
“…이상합니다…지난 스무날 동안, 감시가 없는 날이 없었는데.”
“정말 조용하군…이라도 잡을까나.”
젊은 죄수가 잠시 웃었다.
“하하하하, 이라도 잡을까나가 입버릇이네요.”
나이든 죄수는 벌떡 일어나 물구나무서기를 했다.
“운동을 해야지, 운동을. 이것도 내 입버릇이지.”
“하하하하.”
“일본으로 도망쳤을 때 오사카에서 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때 오사카 사투리를 배웠지. 기분이 우울할 때는 오사카 사투리가 그만이야.”
글 유미리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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