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년, 특별시연합시회 초대 의장 니콜라스 런던은 19세기 사상가 칼 마르크스에 슬쩍 기대어 강조했다.
이 음악의 작곡자는 은석범이다.
석범은 악보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 눈을 감으면 선율이 머릿속을 지나가는 족속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음악의 작곡자는 석범의 뇌파다. 뇌파의 흐름에 따라 멜로디 라인이 잡히고 박자가 붙고 악기들이 어울린다.
리듬인브레인!
뇌파 작곡 시스템은 교육용으로 연구되다가 임상치료용으로 확장되었다.
음악을 만드는 석범의 얼굴이 편치 않다. 벌써 다섯 군데나 불협화음이 생겼다. 심한 스트레스나 과음 혹은 피로가 쌓일 때면 음이 흔들리고 엇박자로 엉켰다.
2035년 석범의 아버지 은기영이 오염지대에서 실종되었다. 2036년 어머니 손미주는 재산을 자연인 그룹에 헌납하고 특별시를 떠났다. 석범은 홀로 서울에 남았다. 춥고 배고프고 외로웠다. 자연인 그룹으로부터 배신자란 비난이 날아들었다. 무엇인가를 단 한 번도 믿은 적이 없는 그에게 배신(背信)이란 납득하기 힘든 낙인이었다. 그리고 그 2월이 닥쳤다.
2036년 서울특별시에는 3만 여개의 유사종교 공동체가 활동 중이었다. 비투비〔Brain to Brain〕를 통해 신도의 뇌와 직접 이어진 하이하이! 선생님의 가르침은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 경쾌한 마림바 반주에 맞춰 '하이하이!' 라고 외친 후 가르침을 쏟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 물론 비투비 이용자는 타인의 교신 신청을 거절할 권리가 있다. 형체도 교리도 없었지만 매력적인 소리만으로 교세가 확장되었다.
배신자란 메일을 백 통도 넘게 받은 저녁, 하이하이! 선생님이 석범의 뇌를 처음으로 방문하였다.
'하이하이! 손등이 좋겠어. 드릴로 한 가운데를 뚫으면 네 막힌 가슴도 뻥뻥 뚫릴 거란다. 고통은 잠깐이지만 기쁨은 영원해. 자, 어서 시작하렴.'
<천국과 지옥의 결혼>이란 비투비 존에 들어가면, 하이하이! 선생님의 제자들이 선생님의 어투를 흉내 내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하이하이! 코를 잘랐습니다.
-하이하이! 쇠꼬챙이로 배꼽을 찔러 등으로 뽑았지요.
-하이하이! 바늘 오십 개를 삼켰습니다. 다음엔 백 개에 도전할 거예요.
-하이하이! 총구를 쇄골에 대고 쐈지요. 아내는 출혈과다로 죽었지만 저는 멀쩡하답니다. 닷새 후엔 옆구리로 가려고요.
자학으로 기쁨을 얻는 방법은 끝이 없었다. 새로운 경험이 소개될 때마다 제자들은 열광하며 박수를 쳐댔다. 죽음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느냐에 따라 고수와 하수가 판가름 났다. 빨리 고수가 되려는 석범의 마음을 읽은 하이하이! 선생님이 치명적인 가르침을 흥겹게 폈다.
'하이하이! 좋다. 네 큰 슬픔을 단번에 지우자. 그렇다고 죽지는 말아야겠지? 지혈제를 넉넉하게 준비해. 일을 시작하고 5분 후 의사가 도착하도록 예약을 미리 하고. 자신 없으면 벌목 로봇을 이용해. 잠깐이면 끝나. 톱날을 무릎에 댄 후 가볍게 밀면 끝이니까. 얼마나 기쁘냐고? 말로 할 수 없지. 암, 지금까지 맛본 기쁨은 아무 것도 아니야.'
의사가 도착했을 때 침대 시트는 피범벅이었고 쇼크에 빠진 석범의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2036년에서 2039년까지 3년 동안 병원에 갇혀 지냈다.
지혈을 하고 기계발을 붙이는 데는 보름이면 충분했지만, 하이하이! 선생님과의 작별이 쉽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고 또 잊을 만하면 찾아왔다. 포크로 팔뚝을 찌르고 벽난로에 머리를 박으려고 달려갈 때마다 한 달이나 두 달 씩 퇴원이 연기되었다. 2039년 정초부터 병원은 아침 눈을 뜨자마자 헤드셋을 씌웠다. 그리고 불협화음 횟수를 세어 퇴원 날짜를 늦춰 잡았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 번이 넘으면 열흘이 늘었고 스무 번이 넘으면 심신불안이 극심하다는 의견과 함께 한 달 간 독방 신세였다.
늦가을 퇴원 후 3년 남짓 시험공부에 매달렸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후에는 정신병원 전력이 문제가 되었고, 하이하이! 선생님의 교신 신청을 3년 동안 한 차례도 수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받은 다음 검사로 임명되었다. 2043년 석범이 시험에 합격하기 반 년 전, 57퍼센트 기계몸을 지닌 검사 후보를 불명확한 이유로 제외시켰다가 '인권-로봇권 통합 보호 위원회'의 문제제기로 탈락이 취소된 사례가 유리하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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