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23>

  • 입력 2009년 2월 5일 13시 45분


뇌파 청진기 : 리듬인브레인 시연회

인간의 뇌는 1초에 백 번씩 두드려대는 열정적인 드럼이다. 생각이란 걸 하는 동안, 날카로운 전기 스파이크들이 스피커를 사정없이 두들겨댄다.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았어도, 심지어 잠을 잘 때도 드럼은 멈추지 않는다. 생각의 속도가 더디듯 비트만 느려질 뿐.

1950년대 초, 독일의 어느 예술가는 뇌의 전기신호 즉 뇌파를 앰프와 스피커에 연결하여 소리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인류 최초로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소리'를 접한 이 예술가는 뇌파 독주회를 열었다. 미국의 어느 예술가는 20명이 넘는 사람들 머리에 뇌파 측정기를 씌운 후 대규모 뇌파 합주회를 개최했다. 뇌파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전혀 조화롭지 않았지만, 20세기 예술가들은 '마음이 만드는 소리'에 매료되었다.

2010년대 초, 한국의 어느 과학자는 뇌파를 '청진기'로 사용하고픈 충동에 사로잡혔다. 우울증 환자의 뇌파가 만들어내는 무거운 진혼곡을, 정신분열증 환자의 뇌파가 만들어내는 열정적인 광시곡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 곁에 '소리 아닌 것을 소리로 바꾸는 기술', 즉 음향화(sonification) 기술을 애용하는 예술가가 한 명 더 있었다. 이 둘은 정신분열증 환자와 우울증 환자의 뇌파를 음악으로 옮겨 연주회를 가졌다.

치매 환자의 뇌파도 음악으로 바꿨는데, 그 곡은 자장가처럼 느리고 또 슬펐다. 환자들의 뇌파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전혀 유쾌하지 않았지만, 21세기 의사들은 환자들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뇌파 청진기'에 또한 완전히 매료되었다.

의료장비 회사 <뉴로스캔(Neuroscan)>의 신임 상무 이지영은 리듬인브레인(Rhythm in Brain)의 시연회 준비로 바빴다. 기기의 성능과 음향 상태를 점검하고 좌석 배치까지 최종 확인한 후 발표할 자리에 서서 보안청 회의실을 천천히 훑었다. 그리고 시연 자료 첫 줄, '리듬인브레인의 정의'를 눈으로 빠르게 읽어 내렸다.

뇌파의 주파수로 멜로디를 만들고 알파파의 비율로 리듬을 구성하는 뇌파 작곡 시스템.

지영은 문득 본질적인 의문이 들었다.

'뇌파로 음악을 만드는 행위를 진정한 작곡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순간 보안청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서 제 자리를 찾아 앉았고, 곧바로 시연회가 시작되었다.

지영은 3D 홀로그램 자료를 무대에 투영하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미사여구는 생략하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이 보안청의 보고방식이었다.

"뇌파 음악 작곡시스템인 리듬인브레인은 직원들의 스트레스 정도를 진단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원들을 특별 관리하도록 도와주는 의료장비입니다."

보안청 간부들은 '특별 관리'라는 단어에 주의를 기울이는 듯 했다.

"스트레스의 양이 지나치게 증가하면 코티솔의 영향으로 뇌파의 스펙트럼은 넓은 주파수대역으로 퍼집니다. 덕분에 '불협화음'이 나타날 확률이 크게 증가하죠. 안정된 상태에선 장조 톤의 프랙탈 음악이 작곡되지만, 스트레스가 증가하면 듣기 거북한 불협화음들, 그러니까 가우스 음악이 튀어나옵니다."

"프랙탈 음악과 가우스 음악? 그게 뭡니까?"

한 간부가 호기심을 애써 숨기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프랙탈이란 세부구조가 전체구조를 반복하는 매우 정교한 구조를 말합니다. 나무가 가지를 치고, 그 가지들이 다시 잔가지를 치고, 그 끝에 달린 잎사귀를 들여다봐도 미세한 가지들이 뻗어 있지요. 이게 바로 전형적인 프랙탈 패턴입니다."

"뇌파도 프랙탈 구조를 이룬다는 얘기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뇌파를 얼핏 살피면 매우 복잡한 신호처럼 보이지만, 그 중 일부만을 확대해서 분석하면 뇌파 전체 패턴과 유사한 구조를 띠지요.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프랙탈 구조를 가진 신호로 음악을 만들면 매우 아름다운 곡이 나온다는 겁니다. 낮은 음들이 주를 이루지만, 높은 음들도 적당히 섞이고, 더 높은 음들도 조금씩 끼어드는 '황금 비율' 말입니다."

"스트레스가 높아지면 그 황금 비율이 깨어진다?"

지영은 자신 있게 바로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독일에서 제가 연구한 논문 주제가 바로 그겁니다. 체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이 증가하면 뇌파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가우스형 소음의 형태를 띠게 되지요. 그러면 음악이 불협화음으로 가득 찬 소음으로 바뀌는데 그걸 '가우스 음악'이라고 부릅니다. 저희 리듬인브레인은 바로 이런 불협화음 정도를 측정해 사람들의 스트레스 레벨과 정신질환 정도를 파악하는 시스템입니다."

"그걸 굳이 소리로 들려줄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냥 화면으로 확인하면 더 간편할 것 같은데……."

"좋은 지적이십니다. 저희가 뇌파 작곡시스템을 만든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리듬인브레인 사용자로 하여금 뇌파가 만들어내는 음악을 들으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스트레스를 조절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인간에게는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자신의 뇌파 소리를 들으면서 그 톤을 조절할 능력이 있습니다. 뇌파를 조절하면 뇌가 바뀌고, 뇌가 바뀌면 마음도 바뀌지요."

"마음이 뇌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뇌파가 마음을 만든다…… 헌데 꼬박 꼬박 뇌파 '작곡' 시스템이라고 얘기하는군요. 뇌파가 정말 작곡을 한다고 믿는 겁니까? 인간의 창조성이 아닌 '우연'에 기대 음들을 나열하는 시스템을 작곡이라고 부른다면, 실제 작곡가들이 굉장히 기분 나빠할 텐데."

드디어 우려했던 질문이 터져 나왔다. 시연회 직전 비슷한 의문을 품었던 지영도 적절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모든 뇌파가 음악이 되는 건 아닙니다. 저희 시스템에는 뇌파 패턴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변환하는 매직 변수들이 저장되어 있죠. 또 그날그날 뇌파 패턴에 알맞은 악기도 알아서 결정하구요. 적절한 비트 이펙트도 스스로 넣어줍니다. 생각이 그럴듯한 흐름을 지니듯, 뇌파 음악도 근사한 음악적 구조를 가집니다. 그래서 저희는 리듬인브레인이 음악을 작곡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작곡이란 것도 우리의 뇌파가 표현하려는 소리를 악보에 옮겨 적는 과정이 아닐까요?"

"뇌파가 표현하려는 소리를 옮겨 적는 것이 작곡이라…… 흥미로운 해석이군요."

지영은 궁색한 변명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간부들은 더 이상 그 문제를 따지고 들진 않았다. 다행이었다.

상석에 앉은 보안청장의 입에서 제일 중요한 질문이 나왔다.

"보안청 전체 직원들에게 이 리듬인브레인 시스템을 장착하려면 얼마나 필요하오?"

"제품 가격이라면 저희 사장님과 따로 말씀하시면 충분히 협상이 가능할……"

"가격 말고 기간! 보안청 직원들은 평소 스트레스가 무척 많소. 스트레스로 인한 보안청 내 총기 사고나 자살도 끊이질 않는다오. 리듬인브레인이 요주의 직원들을 특별히 관리해 줄 수만 있다면 비싼 가격도 감내하리다. 되도록 빨리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지 않겠소? 서울특별시의 더없이 소중한 인재들이라오."

"저는 우선 제 머리에부터 장착해 보고 싶습니다."

보안청장 바로 왼편에 앉은 간부가 능글맞은 웃음으로 거들었다.

"박 팀장 뇌파는 듣지 않아도 뻔해! 항상 여자 생각뿐이니 음악도 끈적이는 음악이겠지, 뭐."

잔잔한 웃음이 맴 돌다가 사라졌다. 보안청장이 자료집 겉장에 적힌 발표자 이름을 확인했다.

"이지영 상무님! 설명은 잘 들었소. 그럼 이 상무님이 리듬인브레인을 직접 시연해주겠소?"

"아, 네…… 당연히 보여드려야지요."

지영이 자리를 옮겨 연단에 마련된 의자에 앉은 후 리듬인브레인을 쓰고 파워를 켰다.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롭고 어지러운 불협화음이 스피커를 통해 터져 나왔다. 불협화음 레벨이 6을 가리켰다. 그녀는 황급히 파워를 끄고 허리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보안청장 입아귀가 천천히 올라갔다.

"허어, 이 상무님이 물건을 꼭 팔려고 너무 긴장했나 보오. 허허허!"

다른 간부들도 함께 웃었다. 참석자들 모두 '인간은 한낱 1초에 백 번씩 두드려대는 드럼'임을 흔쾌히 동의한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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