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는 일이……?"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몇 가지 물음으로 예의를 차릴 작정이었다. 뉴욕특별시에서 유학했다는 말을 달마동자에게서 어렴풋이 들은 듯했다.
"과학자예요."
건성건성 던진 질문에 어울리는 두루뭉술한 답이다.
"네에, 과학자시군요. 그럼 직장은?"
그 다음엔 취미와 특기를 물을 차롄가.
"사이스트에서 연구원으로 일해요. 겸직으로 특별시립 뇌……."
그 순간 밥과 크루아상과 난을 섞은 요리가 접시에 담겨 나왔다. 석범은 콩나물국밥으로 해장했는데도 이상하게 배가 고팠다. 민선이 아랫입술까지 마스크를 내린 후 먼저 포크를 집었다. 맛있게 한 입 넣자마자 욕지기질을 했다. 로봇이 물었다.
"손님! 불편하신 데라도 있으신가요?"
"다시 해 와! 맵고 짜고 시고. 누굴 돼지로 알아?"
꼬마로봇은 석범이 먹어보기도 전에 접시들을 챙겨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맛이 없습니까?"
석범이 사라진 요리를 아쉬워하며 물었다. 민선이 냅킨으로 입술을 훔치며 답했다.
"최최최최최하예요."
손미주 여사가 또 한 사람 있었군!
석범은 잠시 어머니를 떠올렸다. 작가 손미주는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도 자기만의 빛깔을 얹으려고 노력했다. 0.1 퍼센트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12분 후 요리가 다시 나왔다.
석범은 꼬마로봇의 손을 떠난 접시가 테이블에 닿기도 전에 요리를 빼앗아 들고 스푼으로 쓸어 후루룩 볼에 채웠다. 최고는 아니지만 묘하게 섞인 난과 크루아상에 따듯한 밥까지 엉켜 허기를 달랠 만했다. 민선은 이번에도 트집을 잡았다.
"누가 난과 크루아상을 각각 따로 두고 그 안에 밥을 얹으라고 했나요? 나는 완전하게, 무엇이 난이고 무엇이 크루아상이고 무엇이 밥인지 가릴 수 없는 요릴 원해요. 다시 해오세요."
석범은 손에 든 접시를 머리 위로 올렸다. 로봇이 기계팔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손님! 다시 요리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접시를 주십시오. 접시를 주십시오."
로봇이 거듭 청했지만 석범은 벌을 서듯 접시를 더 높이 치켜 올렸다.
"지금 뭣 하는 짓이에요? 창피하게."
민선이 주위를 곁눈질하며 속삭였다.
"민선 씨는 바꿔 드세요. 저는 이 정도도 과분합니다."
"당장 내려놔요! 손님이 요리에 이의를 제기하면, 로봇은 그 요리를 교체한 후 지상에 대기 중인 총괄 인간 매니저에게 보고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어요."
석범은 여전히 접시를 든 채 물었다.
"몇 번이나 요리를 물릴 작정이십니까?"
"한 끼를 먹어도 제대로 먹어야지요. 어서어서 이리 줘요."
민선이 엉덩이를 들고 접시를 빼앗으려 하자 석범은 허리를 젖히며 팔을 뒤로 뻗었고, 민선의 오른손이 그의 어깨를 미는 바람에 접시에 담긴 요리가 주르르 흘러내렸으며, 석범이 남은 요리나마 건지려고 허리를 세웠을 때 민선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두 팔목을 꽉 틀어쥐었다. 어깨를 휘돌려 뿌리치는 그의 가슴에 그녀가 안기듯 이마를 댔다.
사랑의 세레나데가 흘러나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카페를 돌던 현악 로봇 합주단의 솜씨는 빼어났다. 뒤엉켜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행복한 포옹으로 판단한 것이다.
"미쳤군. 그만 둬. 아냐. 아니라고!"
석범이 소리치며 벌떡 일어서자 민선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벌렁 나자빠졌다. 헤어핀이 풀어지는 것과 동시에 눈과 입을 가렸던 선글라스와 마스크가 한꺼번에 벗겨졌다. 민선이 급히 고개를 숙였지만 부어오른 턱과 멍든 눈두덩을 가릴 수 없었다.
"다, 당신은…… 그 비명!"
의기양양한 사무라이 로봇 무사시와 허리가 잘려 쓰려진 로봇 글라슈트가 떠오르고,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 발광하던 볼테르의 얼굴이 겹쳤다.
"맞죠, 글라슈트 팀? <보노보> 중계 봤습니다. 턱은 괜찮습니까? 많이 부었네요."
"비켜요. 재수 없어."
민선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줍지도 않고 황급히 카페 출구로 뛰어나갔다. 뒤따르는 석범을 막은 것은 앨리스의 홀로그램이었다.
"검사님!"
"나중에, 남형사! 나중에."
석범이 앨리스의 가슴을 뚫고 지나쳤다. 앨리스가 그의 뒤통수를 향해 외쳤다.
"살인사건입니다."
석범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었답니다. 사건 현장으로 바로 와주십시오. 저도 지금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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