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소설은 독자가 쓰고 방송은 시청자가 만든다. <보노보> 개국 특집 ‘연속 좌담회’가 ‘배틀원’을 주제로 찬반논쟁을 벌이는 것은 예정에 없던 기획이었다. 로봇방송국의 발전방향과 미래전략을 토론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로봇격투기대회를 다루는 것은 자연인 그룹의 경고가 <보노보>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보노보> 개국 덕분에, 얼마 후 열릴 로봇격투기 대회 ‘배틀원 2049’의 열기는 이미 뜨거웠다.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할 로봇 팀들이 매일 <보노보>를 통해 소개됐고, 새로운 로봇 디자인, 몸동작 신기술, 기록 단축 등 배틀원 소식을 전하느라 로봇기자들은 분주했다.
그 중 초미의 관심사는 ‘데스 매치’의 우승 로봇이었다. 토너멘트의 모든 경기는 표가 매진됐고, 전체 경기 생중계를 맡은 <보노보>의 예상 광고수입은 기대치를 훨씬 웃돌았다.
자연인 그룹의 경고가 매일 <보노보>로 날아들던 무렵, 부산시의 어느 초등학교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가정용 로봇 두 대에게 격투를 시켰다가 사고가 발생했다. 격투 도중 떨어져나간 로봇의 팔에 맞은 어린이의 코뼈가 부러지고 광대뼈가 함몰된 것이다. 배틀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배틀원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까지 등장하자, <보노보>는 연속 좌담회 주제를 급하게 변경하였다. 일종의 정면 돌파였다.
방청로봇들이 수신호에 맞춰 크게 손뼉을 치는 것으로 좌담회가 시작되었다.
무대에는 글라슈트 팀장이자 로봇공학자 최 볼테르, <보노보> 사장 찰스, 앵거 클리닉 원장 노윤상 박사가 자리했다. 방송 제작진은 여론을 의식해 <보노보> 사장의 출연을 만류했지만, 찰스는 막무가내로 자신이 나가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만큼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증거이기도 하고, 사실 이것이 찰스의 스타일이었다.
사회자는 사고 소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배틀원 2049’로 인해 로봇격투기대회에 대한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얼마 전 부산시의 어느 놀이터에서 가정용 로봇끼리 격투 장난을 벌이다가 어린이가 부상당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최 볼테르 박사님께서는 로봇공학을 연구해오셨고 또 ‘배틀원 2049’에 참가하는 분으로서,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십니까?”
좌담회 내내 고개를 숙인 채 노트에 무언가를 끼적이던 볼테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매우 불행하고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열 살 때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키가 2미터 30센티미터나 되는 로봇을 혼자서 분해하다가, 강철다리가 동시에 꺾이는 바람에 로봇 밑에 깔렸었지요. 다친 어린이의 쾌유를 빌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볼테르가 꼰 다리를 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배틀원 폐지를 주장하는 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로봇격투기대회는 ‘첨단 지능로봇기술과 엔터테인먼트를 접목하여 인간 공존형 휴머노이드 로봇의 실용화 가능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인간과 로봇이 함께 사는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2002년도에 처음 시작됐으니 그 역사도 올해로 무려 47년째입니다.”
볼테르의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었다.
“인류 역사상 과학자끼리 벌인 ‘선의의 경쟁’만큼 과학기술의 발전을 앞당긴 방법도 없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수많은 컴피티션(competition, 상금을 걸고 정해진 목표에 도달해 기술적인 테크닉을 뽐내는 경쟁 대회)을 통해 과학기술의 발전을 촉진해 왔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1차원적인 DNA 배열구조만 가지고 3차원 단백질 구조를 유추하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어떻게 뇌 영상 데이터만 가지고 정신질환을 진단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는지 아십니까? 모두 컴피티션으로 이룬 겁니다. 로봇격투기대회는 로봇공학 발전에 획기적인 기폭제가 될 겁니다.”
앵거 클리닉 노원장이 카이저 콧수염을 만지며 반론을 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그 ‘컴피티션’이 ‘격투기대회’라는 아주 폭력적인 방식을 취해야만 가능한 걸까요? 좀 더 신사적인 그러니까 비폭력적인 방식으론 로봇공학기술의 발전을 도모하지 못하나요? 저는 인간의 극단적인 감정, 그중에서도 분노와 화를 치료하는 의사입니다. 분노와 화를 조장하는 경쟁은 인류의 정신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입힐 겁니다. 로봇들의 격투는 결국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분노하게 만들며, 끔찍한 비극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모든 대리전이 그렇듯, 결국 싸우는 건 인간들이니까요.”
노원장은 굵은 뿔테안경 너머로 찰스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로봇에게는 다양한 감정이 없습니다. 로봇격투기 대회를 즐길 능력 자체가 없다는 얘기지요. 저는 로봇들을 위한 방송국인 <보노보>가 이 대회를 중계하는 이유가 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대회는 오히려 우리가 우려하는 상황, 그러니까 로봇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마저 있습니다. 당신은 ‘분노한 로봇이 사람을 폭행할 수도 있는 세상’에 살고 싶습니까? 그게 과학자들이 컴피티션을 하는 목적인가요?”
볼테르가 노원장의 질문에 답변하기 직전, <보노보> 사장 찰스가 발언권을 가로챘다. 그는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
“당신은 스님 같은 얘기나 하고 있군요. 당신은 어렸을 때 K1이나 레슬링, 권투 같은 격투 경기를 본 적 없습니까? 소싸움이나 개싸움 같은 민속놀이를 구경한 적 없습니까? 사람에게는 누구나 평소에 표현할 수 없는 ‘억눌린 폭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대회라도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우리 안에 꿈틀대는 폭력성을 건전하게 배설할 수 있습니까? 게다가 과학기술의 발전까지 가져다주는데, 뭐가 문젭니까? 저는 오히려 이런 공정한 게임이 우리네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찰스가 그답지 않게 존댓말로 이야기를 풀었지만, 이내 반말이 섞여들기 시작했다.
“배틀원 대회를 기다리면서, 나는 내가 희대의 흥행사이자 스포츠재벌인 역사적인 프로레슬러 빈스 맥마흔이라도 된 것 같이 즐거워요. 여러분이 진정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게 뭐든지 보여주고 싶어! 언젠가 로봇도 다양한 감정을 지니는 날이 온다면, 우리가 중계한 작품들이 그들에게 아주 귀한 볼거리가 될 거란 말이지. 로봇격투기는 싸움이 아니라 ‘아트’니까. 알아들어?”
찰스가 고개를 숙인 채 딴 짓만 하는 볼테르에게 버럭 화를 냈다. 사회자가 급히 끼어들었다.
“아 네,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분위기가 아주 격렬한데요. 이 열기를 모아, 함께 자리하진 못하였지만 홀로그램으로 토론에 참여해 주시기로 한 <도시의 종말>의 저자 손미주 씨께 마이크를 넘겨보겠습니다.”
사회자의 멘트가 이어지는 동안, 자연인 그룹 리더인 손미주가 홀로그램으로 무대에 나타났다. 야위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눈빛만은 결연했다.
“배틀원을 야만적인 격투로 취급할 것인가 신사적인 스포츠로 간주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로봇기술에 의지하는 인류문명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자본 그리고 권력과 결탁한 기술은 인간에게 폭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백 번 양보해서 신사적인 스포츠를 통해 로봇공학기술을 발전시킨다고 해도, 그 결과물인 로봇은 결국 우리에게 폭력적인 삶을 선사하고 말 겁니다…….”
그녀는 힘겨운 듯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 대회를 치르기 위해 지금도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과학자가 우승하려고 자신들의 지적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기업이 그들을 후원하고 있나요? <보노보>는 로봇격투기대회를 이용해 돈을 벌고, 다시 그 돈은 로봇의 볼거리를 위해 사용되겠지요? 우리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로봇기술 개발에 쏟아 부은 돈과 노력을 지금이라도 생태 환경을 위해 돌린다면, 인류는…….”
미주가 말을 맺기도 전에 갑자기 무대 조명이 꺼지면서 홀로그램이 홀연 자취를 감췄다. 묵직한 굉음과 함께 스튜디오의 왼쪽 벽과 앞쪽 벽이 동시에 무너졌다. 사방이 온통 먼지로 자욱했다.
볼테르와 노원장은 연이은 기침에 눈물콧물을 쏟으며 겨우 기다시피 복도로 빠져 나왔다. 찰스는 비상탈출구로 이미 내려간 듯 보이지 않았다. 로봇방송국 <보노보>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배틀원 격투 현장이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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