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미 힐피거, 빌리 조엘, 미키 루크, 폴라 압둘, 제시카 알바. 한때 세상을 풍미했던 이들 스타의 공통점은 퍼그를 키웠다는 점이다. 점잖고 참을성이 많으며 자존심이 강한 퍼그를 그들은 사랑했다.
많은 사람에게 추앙받는 영웅들은 유독 개를 좋아한다. 역사상 가장 많은 개를 기른 사람으로 알려진 13세기 몽고 제국의 황제 쿠빌라이 칸(칭기스 칸의 손자)은 무려 5천 마리나 되는 마스티프를 길렀다. "모든 개는 주인을 나폴레옹으로 여긴다. 그래서 누구나 개를 좋아한다"라고 했던 영국의 과학소설가 올더스 헉슬리의 말이 옳다면, 그들은 집에서도 영웅 대접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혹시 그들이 누구보다도 더 외로운 존재는 아니었을까? 타미 힐피거도, 빌리 조엘도, 쿠빌라이 칸도, 감정을 나눌 친구가 한 명쯤은 필요했으리라. 2049년 현재 지구상에는 약 2억 3천만 마리의 개들이 살고 있다. '개들의 수만큼' 많은 사람들이 각별히 외롭다는 얘기다.
A아파트에서 살해된 도그맘 시정희도 그랬다. 20년 째 그 아파트에서 혼자 지낸 그녀에게 개는 소울메이트였고, 생의 마지막을 함께 한 퍼그는 더욱 그랬다. 차우차우와 비글, 닥스훈트, 골든 리트리버 등을 두루 키워보았지만, 퍼그에겐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도그맘은 그녀의 퍼그를 '도끼'라고 불렀다. <반려동물의 역사>를 집필하면서 퍼그라는 말이 원래 라틴어의 '꽉 쥔 주먹' 혹은 '도끼'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안 후, 언젠가 퍼그를 사면 '도끼'라고 이름 붙이리라 마음먹었다. 도그맘은 지난 몇 년간 하루 종일 도끼와 함께 했다.
메디컬 존에서 감염여부를 검사받던 도끼의 사체가 대뇌수사팀으로 긴급 이송됐다. 지병식 형사는 '퍼그 사체에 묻은 혈흔을 검사하기 위해서'라고 둘러댔지만, 메디컬 존의 수의사들은 다소 의아해했다. 감염여부를 충분히 검사한 후 수송해 가도 늦지 않을 텐데, 지형사의 독촉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하지만 격무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그 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스티머스는 과연 도끼가 사건 현장에서 본 광경을 재생할 수 있을까? 인간의 뇌에 맞춰 만들어진 스티머스가 개의 뇌에서도 제대로 작동할까? 석범은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 도끼의 뇌를 스티머스에 넣고 돌려보자는 생각은 그의 아이디어였지만, 결과가 좋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과학논문 검색엔진 '펍메드'(PUBMED)에 따르면, 지금까지 퍼그의 뇌에 관한 논문은 겨우 30편이 전부였다. 공교롭게도 이들 대부분은 '퍼그 뇌염'이라고 알려진 괴사성 수막뇌염에 관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정상적인 퍼그의 뇌 기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동물 액티비스트들의 시위로 인해, 특정 종의 쥐나 고양이, 원숭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에 대한 신경생리학적인 연구는 본격화되기 힘들었다.
특히 개는 실험실에서 사용하는데 금기시되던 동물이기에 연구에 큰 제약이 따랐다. 퍼그의 뇌에도 단기기억을 저장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존재할까? 과연 퍼그 뇌의 신경세포들은 인간의 그것과 유사한 전기생리학적 특징을 보일까?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메디컬 존에서 보내온 차트에는 도끼에 관한 상세 정보가 담겨 있었다. 도끼는 수컷이었으며 추정 나이는 5살. 개들은 태어난 지 1년 만에 인간으로 치자면 20세 청년처럼 성장이 완료되고, 그 후론 '인간의 5년'에 해당하는 1년을 보낸다. 이렇게 계산하면 도끼의 생물학적 나이는 얼추 40대 중년이다. 크기는 32센티미터, 몸무게는 7.4킬로그램. 신체사이즈 면에서는 그저 평범한 퍼그였다.
하지만 도끼의 외모는 매우 특출 났다. 퍼그 종의 매력인 이마의 주름이 특별히 발달했으며 콧등과 주둥이가 매끈하게 짧았다. 옆에서 보면 거의 직각으로 보일 정도로 선이 잘 빠진 개였다. 눈동자는 진한 검은색을 띄었으며 코와 입 주변도 매우 검었다. 교합(턱)은 언더샤트(아래턱의 절치가 위턱의 절치보다 전방으로 더 나온 형태)였고 귀는 전형적인 '버튼 이어'였다. 다리도 강직했고 무엇보다 털이 고왔다. 누가 봐도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퍼그였다.
안타깝게도, 대검수사팀으로 실려 온 도끼의 모습은 흉측했다. 여기저기 피멍이 들었고 갈비뼈도 여럿 부러졌다.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축 늘어져서 예전의 외모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도그맘을 끔찍하게 살해한 것도 부족해서 불쌍한 개까지……. 누가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석범은 생애 처음으로 개의 두개골을 열고 뇌를 꺼내는 시술을 수행했다. 도끼를 수술대에 올려놓고 머리털을 깎은 후 두피를 메스로 벗겼다. 사람보다 피부가 더 두껍고 미끈거렸다. 피부를 벗기자 드러난 두개골을 드릴과 정으로 금을 낸 후 조심스럽게 쪼갰다. 그리고 천천히 뇌를 꺼냈다.
뇌의 크기는 사람의 것보다 많이 작았지만 척수와 연결된 뇌간(brain Stem)은 상대적으로 컸다. 평형감각이나 근육 운동을 조절하는 소뇌(Cerebellum)도 발달했다.
시상(Thalamus) 위쪽에 위치한 대뇌(Telencephalon)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대뇌의 상당부분은 감각영역이 차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개는 냄새를 맡는 뇌 영역(olfactory bulb)이 발달했기 때문에 인간보다 백만 배 이상 후각이 뛰어났다. 꽃냄새에는 둔감하지만 고기 냄새에는 놀라운 감지능력을 자랑하는 것도 이 영역의 발달 때문이다.
석범은 어머니 손미주가 '개의 청력은 인간보다 월등히 좋다'고 말해주던 기억을 떠올렸다. 개들은 고음은 물론 초음파까지 들을 수 있다. 개가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자기 귀를 쫑긋거리며 바짝 긴장한다면, 그건 그 순간 인간은 들을 수 없는 '천사가 날갯짓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석범에게 일러주었다. 스티머스 장치 옆에서 떠올리기엔 지나치게 낭만적인 기억이었다.
단기기억이 저장되는 것으로 알려진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크기는 무척 작아보였다. 전전두엽을 통째로 잘라 스티머스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석범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분석하는 동안 생명활동이 유지되도록 영양분이 담긴 장액(serum)과 산소 공급튜브를 연결했다. 패치 클램프 장치를 연결해 전기 자극을 주면서 막전위와 시냅스 사이의 연결 강도를 측정하는 단계로 들어갔다. 전기 자극이 가해지자 퍼그의 신경세포는 인간의 활동전위와 비슷한 모양의 스파이크를 만들어냈다. 다행이었다.
전전두엽에서 얻은 시냅스 연결 분포 정보를 모두 끄집어내 영상으로 재구성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넘어온 데이터 파일의 크기가 사람의 8분의 1 수준이었다. 도끼의 전전두엽 크기는 사람 전전두엽 크기의 4분의 1 수준이었지만, 기능적으로도 많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개들은 단기기억이 유달리 짧다는 것을 알았다. 영상을 제대로 재생한다고 해도 그 시간은 고작 1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데이터의 크기가 훨씬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3시간이 지나도 스티머스는 영상을 뽑아내지 못했다. 퍼그는 아니 개는 인간이 단기기억을 저장하는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전전두엽이 작동하고 있었다. 전전두엽 신경세포들 사이의 시냅스 연결강도 분포도 인간과 현저히 달랐다. 그것으로 영상을 재생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적절한 패턴을 찾지 못했습니다'라는 에러 메시지를 스티머스는 수시로 보여주었다.
석범은 복도 밖에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스티머스 상태를 몇 초 간격으로 확인하면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남형사가 커피를 들고 왔다.
"결과가 잘 나올까요?"
"글쎄, 전전두엽의 크기가 훨씬 작고 신경세포들의 전기 전도도나 리셉터 분포가 많이 달라서 걱정돼. 쉽게 결과가 나오면 오히려 이상한거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일단 해보고. 정 안되면 특별시립 뇌 박물관장 박문호 박사께 자문을 받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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