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슈트! 서둘러 입장해주세요. 10분 안에 입장하지 않으면 기권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최후통첩이 날아들었다. 대기실 출구에 선 세렝게티와 보르헤스 그리고 민선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숙이고 앉은 볼테르를 쳐다보았다.
"가야 해요. 별 일 없을 겁니다. 서 트레이너는 아마 오는 길이겠죠. 우선 출전부터……."
민선이 말꼬리를 흐렸다. 볼테르가 갑자기 머리를 들고 그녀를 노려본 것이다.
"찾았소?"
"무, 무얼요?"
민선은 볼테르가 던진 질문의 속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원인 말이요, 글라슈트가 이상행동을 하는."
"샅샅이 점검했지만 이상이 없었어요."
"이상이 없는데…… 로봇이 이상행동을 할 수는, 없소."
볼테르가 분노를 꾹꾹 누르며 말을 맺었다.
4강전에서 글라슈트가 선보인 광폭한 행동의 원인을 아직까지 찾지 못한 것이다. '죽음신호'와 함께 모든 행동을 멈추도록 프로그래밍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글라슈트는 계속 주먹을 휘둘렀다. 수십 번 경기 중계 화면을 돌려 보며 분석해도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했다.
이상행동!
로봇의 움직임을 '이상행동'이라고 지칭하는 것만큼 로봇공학자에게 모욕적인 일은 없다. 물론 복잡하고 불규칙적인 움직임을 낳는 프로그램일 경우 낯설고 특이하게 보일 가능성은 있지만,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모두 근거가 있기 마련이다.
서사라도 글라슈트에게 저렇듯 광폭한 동작을 가르친 적이 없다고 했다. 퓨전무술 W는 예절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싸울 능력이 없거나 이미 항복한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다.
"……고장이 생겨 멈추는 것도 아니고 파괴력이 순간적으로 열 배나 상승하니……."
세렝게티가 무릎을 흔들며 슬쩍 이상행동을 좋은 쪽으로 해석했다.
"시합이 끝난 후 지금까진 또 고분고분하니까요."
보르헤스도 둥근 배를 쓰다듬으며 의견을 보탰다.
"뭐야?"
볼테르가 고함을 지르자 두 연구원은 시선을 내리 깐 채 꼿꼿하게 차렷 자세로 섰다.
"통제불능이 얼마나 위험한 줄 몰라서 그런 소릴 해? 격투를 하다가 관객을 향해 달려들기라도 하면 어쩔 테야?"
"…… 객석 보호 장치가……."
세렝게티가 흐물흐물 말대답을 했다.
"파괴력뿐만 아니라 순발력도 열 배야. 철망을 뚫고 격투장에서 객석까지 8미터 정도는 가뿐히 올라설 지도 모른다고."
그제야 세렝게티와 보르헤스도 글라슈트의 이상행동이 낳을 수도 있는 불상사가 그려지는 듯했다.
"우선 출전부터 해요. 이상행동 때문에 설마 시합을 포기하려는 건 아니겠죠? 평생 단 한 번밖에 오지 않는 기회일 지도 모른다고요. 가야 해요."
민선이 독촉했다.
"서 트레이너가 꼭 시합 전에 원인을 찾겠다고 했소. 아침에…… 없기에 연구소에 갔으려니 했지. 그때 바로 나왔어야 했는데…… 은 검사랑 망할 놈의 보안청 형사들을 따돌리느라……"
결승전까지 팀원 모두 비밀 연구실에서 촌각을 아껴 글라슈트를 정비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결승전 전날 아침 서사라가 다시 발작을 일으켰던 것이다. 발작은 1분 만에 진정되었지만, 볼테르는 한사코 그녀를 쉬게 하겠다며 데리고 나갔다. 자연스럽게 다른 팀원들도 비밀 연구실을 나왔다. 글라슈트를 사이스트 차세대 로봇 연구소로 옮긴 민선과 두 연구원은 '이상행동'의 원인을 찾아서 자는 듯 마는 듯 밤을 보냈다.
"자, 잠깐만요. 은석범 검사를 따돌렸다고요?"
민선이 물었다.
"골목으로 재빨리 숨긴 했지만, 똑똑히 봤소. 큰 키에 짧은 머리, 은 검사가 분명 했소."
"착각이시겠죠. 은 검사가 왜 그 새벽에 최 소장님 댁 근처에 잠복합니까? 팀원 모두 비밀 연구소에서 곧장 경기장으로 직행할 예정이었다고요."
볼테르도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보안청은 어떻게 그가 귀가한 사실을 알았을까.
"확실히 은 검사였소. 토네이도 강철구두가 아니고는 그렇게 빨리 숨진 못해."
세렝게티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강철구둔가 아닌가는 나중에 따지십시오. 2분밖에 안 남았습니다. 꽁지 빠지게 달려야 해요."
마침내 볼테르가 결정을 내렸다.
"갑시다!"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