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155>

  • 입력 2009년 8월 10일 13시 41분


세렝게티와 보르헤스 그리고 민선이 연회장으로 들어서자 박수가 쏟아졌다. 석범은 슬쩍 옆으로 비켜나서 박수 대열에 동참했다. 찰스가 서령을 옆에 끼고 퉁퉁퉁 나아왔다.

"아! 오늘의 주인공들이 이제야 오셨군. 우승을 축하합니다! 곧 파티가 시작될 땐데 글라슈트 팀 리더인 최볼테르 교수님은 어디 계십니까?"

민선이 답했다.

"글라슈트와 먼저 출발하셨습니다. 아마도 2층 전시실에서 마무리 손질을 하실 듯합니다."

"마지막 펀치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혹시 글라슈트가 2층 전시장을 때려 부수고 있는 건 아닙니까?"

찰스의 농담이 분위기를 어색하고 차갑게 만들었다.

그것도 유머라고!

민선이 단정하게 답했다.

"만약을 대비하여 배터리를 아예 꺼두기로 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안심이 됩니다. 또 한 분이 안 보이는군요. 서사라 트레이너지요 아마? 글라슈트의 가공할 펀치와 날렵한 몸놀림이 모두 서 트레이너로부터 왔다던데, 맞습니까?"

"네."

"그렇다면 정말 '철의 여인'이겠습니다. 헌데 서 트레이너는 결승전 경기장에서도 보이지 않더군요."

찰스가 글라슈트 팀원을 한 명 한 명 챙겨왔던 것일까. 민선이 적당히 둘러댔다.

"그, 그게…… 부엉이 빌딩 테러 후유증 때문에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부엉이 빌딩 테러라면, 서사라 트레이너뿐만 아니라 노민선 박사도 함께 당하지 않았습니까? 노 박사는 괜찮습니까?"

"네. 서 트레이너가 저를 보호하면서 떨어졌기 때문에……."

"그랬군요. 서 트레이너에게도 축하인사를 꼭 전해주세요. 최볼테르 교수님은 참 꼼꼼하십니다. 우승을 거뒀으니 오늘 하루는 쉴 만도 하건만……. 하긴 그렇게 모든 걸 챙겼기에 배틀원에서 우승할 수 있었겠지요. 자, 축하 샴페인은 전시장으로 옮겨 터뜨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박수가 이어졌다. 서령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격투 로봇들을 둘러보기로 약속한 시간이 30분 정도 남았네요. 최볼테르 박사 방해 말고 조금만 더 기다리죠."

투웅.

변신다리가 바닥을 쳤다. 소리가 꽤 오랫동안 울렸다. 찰스는 화가 날수록 더 높고 빨리 변신다리를 휘둘렀다. 서령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선이 어색한 침묵을 깨며 서령 편을 들었다.

"찰스 사장님도 지적하셨듯이, 최 교수님은 완벽주의자십니다. 예정 시각에 맞춰 글라슈트를 정비하고 계실 겁니다."

"…… 하는 수 없지. 잘 알겠습니다. 그럼 로봇 쇼를 즐기도록 하십시다. 자, 다들 가십시다. 노민선 박사와 두 분 연구원도 마음껏 즐기십시오. 제일 앞자리를 비워 두었습니다."

석범이 조용히 민선의 곁으로 와서 귓속말로 물었다.

"서 트레이너는?"

"아직!"

찰스가 고개를 돌려 민선을 찾았다.

"노 박사님! 어서 오세요. 최 교수가 없으니, 노 박사님이 상석에 앉으셔야지요."

"알겠습니다."

석범이 검지로 제 가슴을 짚었다가 2층 계단을 가리켰다.

내가 먼저 올라가서 최 교수를 만날게.

민선이 고개를 끄덕인 후 찰스를 따랐다.

석범은 방울뱀 꼬리처럼 둥글게 말린 나선형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우승 축하쇼 사회를 맡은 로봇 MC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게임은 끝났고 이제 축제만 남았습니다. 경기장에서 잠시 소란스런 일이 있었지만 다 잊으시고요. <보노보> 개국 축하쇼의 엑기스만 모아 모아서 새롭게 준비해봤습니다. 먼저 오늘 데뷔 무대를 갖게 하려고 <보노보> 개국 축하쇼에도 올리지 않은 열두 명의 로봇 댄스 그룹입니다. 특별히 찰스 사장님이 로봇 캐릭터부터 무대의상과 노래, 춤까지 모두 직접 준비하셨습니다. 자, 볼까요. <로봇 제너레이션>입니다!"

흥겨운 음악이 귓전을 어지럽혔다. 계단을 삥 둘러 낡은 로봇들이 석상처럼 서 있었다. 이 계단만 따라 올라가도 로봇의 역사를 간명하게 파악할 듯했다.

바닥에는 혼다에서 만든 아시모와 베트남 최초의 휴머노이드 토피오, 그리고 프랑스의 나오가 서 있었고, 최초로 의사결정을 스스로 하는 로봇 레오나르도가 그 위에 위치했다. 조금 더 올라가니, 격투 로봇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킹 모라벡과 자이언트 바바, 그리고 사무라이 조도 볼 수 있었다. 계단이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인간의 능력이 로봇에게 하나씩 더해지는 듯했다. 이 계단의 가장 꼭대기에는 과연 어떤 로봇이 차지할까? 차세대 로봇은 또한 상상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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