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속의 과학]이덕환/접착제의 역사

  • 입력 1997년 9월 9일 07시 57분


밀가루를 물에 풀어서 끓인 「풀」은 아직까지 우리 주변의 가장 흔한 접착제이다. 종이나 나무조각 같은 것을 붙이기 위해서 사용하는 접착제는 일상 생활은 물론 산업용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끈적거리는 성질을 가진 화학물질을 적당한 용매에 녹여서 만든 접착제는 강도, 접착 부위의 특성, 마르는 시간, 방수성 등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된다. 예로부터 사용되어 오던 접착제로는 밀가루와 같은 녹말로 만든 녹말풀이나 달걀 흰자위 또는 동물성 풀인 「아교」 등이 있다. 식물성 풀은 한지와 파피루스의 제조에도 사용되었다. 동물의 가죽과 뼈에서 추출한 젤라틴 형태의 동물성 풀 「아교」 또는 어류의 뼈에서 얻은 「부레풀」 그리고 우유에서 얻어지는 「카세인」과 같은 접착제는 가구 제조에 많이 사용되었다. 그 역사는 무려 5천년이 넘는다. 고대 바빌론에서는 「역청」이라는 일종의 아스팔트를 건축용 접착제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녹말풀이나 동물성 아교 또는 수용성 합성 접착제인 폴리비닐아세테이트(PVA)와 같은 경우에는 용매인 물이 증발되면서 접착 성분이 굳어지는 것이다. 이런 접착제는 물이 묻으면 접착력이 없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종이와 목재를 접착시키는 데에는 유용하다. 대표적인 합성 접착제인 「에폭시」접착제는 에폭시 수지에 경화제 또는 촉매를 섞으면 열경화성 플라스틱이 만들어지면서 접착력이 생긴다. 접착력이 우수한 에폭시 접착제는 금속 목재 콘크리트 유리 세라믹 플라스틱 등에 다양하게 사용된다. 메틸 2―시아노아크릴레이트라는 분자가 빠른 속도로 중합되는 반응을 이용한 「슈퍼글루」는 약한 염기성의 물을 섞어주면 10초 이내에 완전히 굳어버린다. 접착력이 매우 강해서 다양하게 이용되지만 슈퍼글루의 기체는 유독성이고 피부에도 강하게 접착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합성 접착제는 흔히 휘발성이 강한 탄화수소 용매에 녹여서 판매되는데 톨루엔과 같은 탄화수소 용매가 환각 작용을 일으켜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접착제라고 모두 접착력이 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스카치」 테이프로 잘 알려진 미국의 화학회사 3M은 접착력이 너무 약해서 쓸모가 없다고 여겼던 합성 접착제로 쉽게 붙였다 뗄 수 있는 「포스트 잇」(Post―It)이라는 메모지를 만들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부족한 것도 때로는 매우 유익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덕환(서강대교수·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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