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도시락 미팅 통해 내실 다져요"

  • 입력 2001년 4월 29일 18시 32분


분침이 정확히 정오를 가리키자 임직원 6, 7명이 도시락통을 들고 창가쪽 회의탁자로 모여들었다. 27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인터넷 게임업체 이바다콤(www.ebada.com).

“친구 2명이 한 벤처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올해초 사직을 했어요. 걱정돼서 전화를 해봤더니 회사에서 해고당한 것으로 처리를 해줘 실업급여 받으면서 편하게 지낸대요. 후배 한 명도 실업급여 받아 웹디자이너 학원에 다니고 있다기에 ‘공부해도 취직하기 어려우니 학원 그만두라’고 충고해줬어요.”

오늘은 이지민씨(여)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점심시간의 주요 화제는 뭐니뭐니해도 벤처업계의 구조조정이다.

이 회사에 도시락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경리담당인 김진영씨(26·여)가 “벤처업계가 모두 어려운 시기에 한푼이라도 줄여보자”며 도시락 싸오기를 제안하면서부터. 비용절감 효과도 있었지만 이제는 둘러앉아 ‘장래’를 토론하고 걱정하는 소중한 자리가 되고 있다.

“요즘 월급 못주는 벤처기업이 한두 곳이 아니던데요. 연봉제 연봉제 하는데 일년에 한번 월급받는 것이 연봉제인가봐요.”(오용탁운영팀장)

“제 친구도 10개월째 월급을 못받았는데 최근 사장이 잠적했답니다. 회사가 투자만 받으면 한턱 낸다기에 밥사주고 술사줬는데…”(김경필)

“그게 바로 연쇄부도야. 요즘 벤처기업 직원은 월급만 꼬박꼬박 받으면 일등신랑감이라고 그러더라. 여러분은 회사 고마운줄 아세요.”(이태한 이사)

한바탕 웃음으로 사무실이 떠나갈 듯 할 때 소포 하나가 배달돼왔다. 대대적인 불법소프트웨어 단속이 시작되면서 주문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가 담긴 CD였다.

“일주일 걸린다더니 두 달이 걸렸네. 그만큼 했으면 됐지 목조르는 포스터까지 보내 협박을 하나.”(이이사)

“그러니까 리눅스를 활성화해야 한다니까요.”(반상하)

화제가 저녁에 있을 운영본부 회식으로 넘어가면서 이이사의 당부가 이어진다. “술 많이 먹는 것은 좋은데 절대 연구소 침대에 가서 자는 일은 없도록 하세요.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하는데 조금이라도 방해가 돼서는 안됩니다.”

점심자리가 파할 때쯤 재무담당 송대웅부사장이 입을 열었다.

“나는 91년 로커스에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월급날만 되면 김형순 사장이 오후 늦게 나타났습니다. 오전 내내 여기저기서 돈을 구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어려운 시절을 보낸 끝에 오늘의 로커스가 된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어렵다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사치입니다. 열심히 합시다.”

<천광암기자>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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