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여고 3학년인 김주현(17)양은 친구가 보낸 E-메일에 첨부된 음악파일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금방 귀신이라도 뛰어나올 듯한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음악과 한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소름이 돋는 가야금 소리와 함께 어떤 여자가 웅얼거리기도 하고, 웃음소리, 울음소리, 신음소리, 비명소리가 계속 나왔어요"
김양은 "이 곡을 보낸 준 친구도 절대로 혼자 듣지 말라고 충고했다"면서 "무서워서 끝까지 듣지도 못하고 계속 귓가를 맴도는 이 음악 때문에 잠을 이루기도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김양에 따르면 같은 학교 친구들 중에는 절반이상이 이 음악을 들어봤으며 혼자 듣다가 무서워서 기절을 한 학생도 있다고 한다.
최근 여고생들 사이에서 E-메일과 음악전문 사이트 벅스뮤직(www.bugsmusics.co.kr), 다음까페(www.daum.net), 소리바다 등을 통해 급속하게 번지고 있는 이 음악은 바로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씨의 3집앨범에 수록된 '미궁'이라는 곡.
21만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다음'의 인기까페 '엽기 혹은 진실'에는 지난 5일 '[자살충동] 미궁이란 노래 들어보셨나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사이트 주소와 자신의 느낌을 간단하게 적은 이글은 곧바로 조회수 634까지를 기록하며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아이디 '미누따랑'이라는 네티즌은 "혼자 있는데 손이 덜덜 떨립니다. 정말 다시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라며 "그래도 안들으신 분은 한번은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공포가 뭔지 느끼실 것 같군요"라며 '미궁'에 대한 감상을 나타냈다.
12일 현재까지 이 까페에 올라온 '미궁'에 관련된 게시물은 100여개. 조회수는 1만명을 넘었으며 소리바다에도 20여개의 '미궁' 음악파일을 포함해 90여개의 황병기씨 작품이 올라와 있다.
1975년 10월, 현대음악제 'SPACE 75'에서 초연됐던 '미궁'은 작곡가 황병기씨의 가야금과 현대무용가 홍신자씨의 목소리가 합쳐진 곡으로 당시 한국음악계에 큰 충격을 준 문제작인 동시에 창의적 표현형식과 내용이 균형을 잃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실제로 18분 가량 이어지는 가야금 연주곡 '미궁'은 한국의 전통악기인 가야금으로 현대음악을 연주한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기묘하고 괴이한 소리로 전해지는 홍신자씨의 목소리는 황병기씨가 연주하는 가야금의 독특한 효과음과 섞여 듣는 이로 하여금 이상한 기분에 사로 잡히게 한다.
어쨌든 1975년 현대인의 고뇌, 정신분열, 절규, 슬픔, 절망 등을 표현하고자 한 황병기씨의 '미궁'은 26년이 흐른 2001년 7월의 여름날, 수 많은 여고생들에게 무더위를 식혀줄 공포물로 다시한번 유명세를 타고 있다.
최건일/동아닷컴 기자 gaegoo99@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