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놈 데이터 공유로 ‘인류 정보’ 퍼즐조각 맞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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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최전선/40주년 맞은 게놈 해독기술]<2> 생명과학 ‘문법’을 바꾸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연구원들이 2010년,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을 최초로 해독했을 때 공개한 작업 모습. 수만 년 전 화석에 남은 소량의 DNA를 찾기위해 가루 시료를 끌어내고 있다. 시료 추출 이후에는 차세대 염기서열 해독 기술로 전체 게놈을 복원한다. 막스플랑크연구소 제공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연구원들이 2010년,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을 최초로 해독했을 때 공개한 작업 모습. 수만 년 전 화석에 남은 소량의 DNA를 찾기위해 가루 시료를 끌어내고 있다. 시료 추출 이후에는 차세대 염기서열 해독 기술로 전체 게놈을 복원한다. 막스플랑크연구소 제공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지난달 중순 열린 ‘게놈·건강을 위한 글로벌연합(GA4GH)’ 학회에서는 인상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참석한 세계 500여 명의 게놈 해독 및 분석 전문가들이 자신들이 어렵게 모은 게놈 해독 데이터를 다른 기관이나 학자들에게 공개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김태형 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 이사는 “어렵게 모은 데이터를 다른 연구자들에게 거저 나눠 주려 하다니 충격적이었다”며 “데이터 ‘공유’가 게놈 연구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공유가 중요한 까닭은 데이터를 모아서 규모가 커져야 ‘더 중요한 질문’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놈은 사람마다 모두 조금씩 다르다. 아프리카인은 개인별로 평균 400만∼500만 개의 염기서열에 차이를 보이고(이를 변이라고 한다), 그 외 지역 사람도 개인마다 300만∼400만 개의 염기서열 차이가 있다. 이런 변이 중 일부는 난치병이나 암 같은 질병은 물론이고 키 등 신체 특성과 직접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변이의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어떤 변이가 어떤 질병이나 신체 특성과 연관되는지 아직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알려면 지역별로 최소한 수만∼10만 개의 게놈 데이터를 모아 서로 비교해야 한다는 게 게놈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세계 각 연구기관이 확보한 데이터를 모으면 마치 모자이크를 완성하듯 전체 정보를 보다 효율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부 교수는 “게놈 정보를 오픈소스 개념으로 조건 없이 공유해 더 큰 혁신을 이끈다는 게 현재의 ‘게놈 해독 혁명’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덕분에 게놈 데이터는 곧 천문학적인 빅데이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언 버니 유럽생명정보학연구소(EMBL-EBI) 소장은 지난달 15일 생명과학 논문 공유사이트 ‘바이오아카이브’에 올린 논문에서 “데이터 생성 속도와 기술의 발전 속도를 고려했을 때 8년 뒤인 2025년에는 적어도 6000만 명의 환자 게놈 데이터를 해독해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는 올해 여름까지의 누적 추정치(약 200만 명)의 30배에 해당하는 수다. 김 이사는 “테라젠이텍스에서만 매년 2만 건 이상의 유전체를 분석하고 있는 등 자료 추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2025년에는 한국도 수백만 개의 게놈 데이터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놈 해독의 정밀도가 높아지면서 새 영역을 개척하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역사학과 인류학, 생태학 등으로 그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 라이크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팀은 8일 독일과 스페인, 헝가리 지역의 신석기시대 농민들이 이주하며 서로 뒤섞인 과정을 정교하게 밝혀 과학잡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역사를 다시 쓴 이들의 ‘무기’는 ‘고(古)게놈학’. 땅에 묻힌 유골이나 뼈 화석에 미량 남아 있는 유전자를 채취, 해독하는 기술이다. 원리는 일반 게놈 해독과 비슷하지만, 화석의 게놈은 세월의 풍화로 DNA가 거의 사라진 데다, 그나마 있는 DNA마저 수백 개 염기서열 단위로 산산조각 나 있어 복원하기 까다롭다. 더구나 땅속 미생물이나 현생인류의 DNA로 오염돼 있어 목표로 하는 화석의 게놈을 구분하기도 어렵다.

라이크 교수팀은 화석의 DNA만 검출해 차세대 염기서열 해독 기술로 게놈을 해독한 뒤 다시 조각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사라진 옛 인류의 게놈을 복원하고 있다.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 등 친척 인류와 섞인 ‘잡종’임을 밝힌 2010년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진화인류학연구소 유전학부장팀의 결과부터, 우울증 등 현대인의 질병 다수가 네안데르탈인에게서 기원했다는 최근 연구까지 다양한 결과가 게놈 해독 기술 때문에 가능했다.

혈액 속에 떠다니는 작은 암세포의 DNA를 포착해 암을 조기에 탐지하는 ‘액체생검’은 최근 생태학 분야를 혁신하고 있다. 액체생검은 초기 암 환자의 혈액 속에서 정상 세포의 DNA 수만 개당 한 개 비율로 섞인 암세포의 DNA를 찾아 해독하는 기술이다. 올해 7월 세계경제포럼(WEF)과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공동 선정한 2017년 10대 신기술로 꼽혔다. 마크 스토클 미국 록펠러대 교수팀은 이 기술을 강물에 응용했다. 연구팀은 미국 동부 허드슨강 하구에서 강물 1kg당 100만분의 5g 이하로 함유돼 있는 어류들의 DNA를 해독해 올해 4월 ‘플로스원(PLoS ONE)’에 발표했다. 연구 결과 개체수가 많은 종의 경우 종의 존재를 81%까지 정확히 검출할 수 있었다. 스토클 교수는 “어류의 지역별, 시기별 분포를 저렴하면서도 정밀하게 알아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게놈#액체생검#게놈 데이터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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