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인간게놈프로젝트와 별개로 인간 게놈을 분석한 미국 셀레라사는 하루 35만 쌍의 염기를 분석할 수 있는 전자동 염기서열분석기가 300대나 있다. 또 고성능 컴퓨터 1200대가 병렬로 연결돼 염기서열 정보를 처리하고 있다. 이런 컴퓨팅 파워는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수입한 염기서열분석기는 통틀어도 고작 23대. 도저히 경쟁이 되지 않는다. 5억 원 짜리 이 기기를 100% 가동할 경우 연간 운영비만 대당 7억 원이 들어간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연구팀이 분석한 게놈은 미생물 두 종뿐이다. 230만 개의 염기쌍으로 이루어진 알코올 발효균주인 자이모모나스와 160만 개인 위암의 원인균인 헬리코박터이다. 이는 30억 쌍에 이르는 사람과 비교하면 1000분의 1도 안 되는 크기다.
이런 상황에서도 몇몇 기업체와 기관이 한국인의 게놈을 분석하는 연구를 나름대로 진행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생명공학 벤처기업 마크로젠은 현재 한국인의 게놈분석에 도전하고 있다. 물론 전체 게놈을 읽어 내겠다는 것은 아니다. 마크로젠이 갖고 있는 염기서열분석기는 셀레라사의 30분의 1에 불과한 10대뿐이기 때문이다.
마크로젠 서정선 대표는 “전체 게놈의 2% 정도가 단백질 유전자 등 의미 있는 정보를 갖고 있고 나머지 98% 이상은 기능이 없거나 확실치 않다”며 “우리는 2%에 해당하는 부분만 집중 분석해 올 6월까지는 초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건강한 성인 남성의 정자에서 얻은 23개의 염색체로 이루어진 게놈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놓은 조각 10만개를 얻었다. 연구자들은 인간 게놈지도를 참고해 이 조각들 중 유전자에 해당하는 것만을 골라 염기서열을 분석하고 있다.
서 대표는 “이런 일은 예전엔 꿈도 못 꿨다”며 “한국인의 게놈이 밝혀지면 우리나라 사람의 고유한 유전적 특징을 알 수 있을뿐더러 한국인이 잘 걸리는 질병을 이해하는데 기초 자료로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 대표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서 염색체 21번을 담당한 일본은 물론 미국의 하청을 받아 5000만 쌍의 염기를 해독한 경험이 있는 중국도 게놈 연구는 우리보다 한 수 위이다”며 “게놈 분석은 생명공학 연구의 기초작업으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인에게 많이 발생하는 위암과 간암의 원인 유전자를 밝히는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의 연구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생명공학기술원 박종훈 박사는 “지난 6개월 동안 정상인과 암환자의 위나 간에서 발현하는 유전자들의 염기서열을 밝혀왔다”며 “지금 속도대로라면 2∼3년 뒤에는 위와 간에서 발현되는 유전자를 모두 분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생명공학기술원은 4대의 염기서열분석기를 이 프로젝트에 투입하고 있다.
박 박사는 “최근 밝혀진 인간 게놈지도와 현재 진행 중인 한국인 게놈 정보를 비교해 한국인의 질병과 유전적 특징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정상인과 암환자의 유전자 발현에 어떤 차이가 생기는가를 이해하게 되면 암 치료에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강석기동아사이언스기자>alchimist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