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과학자와 벤처기업인 7명이 자본금 8만달러(약 9600만원)로 세운 암젠은 빈혈 치료제와 백혈구 증강제 두가지 신약만으로 연간 매출액 36억달러(약 4조3200억원)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에서도 2년전부터 벤처설립 붐을 타고 암젠과 같은 성공신화를 꿈꾸며 300여개의 바이오 벤처가 생겨났다. 바이오 산업의 황무지, 한국에서 싹튼 이 소중한 ‘싹’들이 과연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
▽‘박사’에서 ‘사장’으로〓국내바이오 벤처는 대부분 대학교수나 기업 및 정부출연 연구소의 연구인력들이 창업한 사례가 많아 기술수준이 높다. 분야별로는 생물의약이 전체의 33%로 가장 많고 바이오식품 19%, 생물농업 14%, 생물화학 11%. 하이테크 분야인 유전체 관련업체 등은 전체의 9% 정도에 머물고 있으며 생물정보학 분야는 3%.
창조적인 연구가 ‘대박’으로 연결되는 바이오벤처의 실험실에서 수많은 벤처인들이 밤낮을 잊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서울대 교수 등 박사급 연구원 8명으로 구성된 프로메디텍은 최근 대장균 단백질 3차원 구조를 밝히고 항생제 내성(耐性)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셀론텍은 무릎 연골 세포를 배양하는 기술을 개발,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국내 판매 허가를 받았다.
유전체 기능 분석 사업을 벌이는 팬제노믹스는 미국 현지에서 유전체 구조를 밝히는 데 사용되는 응용 소프트웨어를 개발중이다. KTB네트워크 이광희 팀장은 “국내 벤처기업은 이제 태동기를 지나고 있다”며 “선진국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에 집중하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이오벤처붐에 편승, ‘무늬만 바이오’인 벤처들도 생겨나 ‘시장에서 사이비가 진짜를 몰아내는’ 현상도 벌어진다. 최근 별다른 기술력이나 수익모델도 없는 회사가 상장될 때마다 주가가 수십배씩 급등, 전문가들로부터 냉소를 사고 있다.
DNA 검사를 통해 혈연 관계를 확인하는 바이오 기업은 최근 20개 이상 생겨났다. DNA 검사로 ‘궁합’이나 ‘롱다리’ 등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부분까지 알려준다는 업체들이 생겨날 정도.
▽바이오벤처의 험로〓국내 바이오벤처는 설립 초기부터 전문 인력 및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ADL파트너의 송영호 생명공학팀장은 “신생 벤처들은 정보 교환과 연구장비와 같은 기본적인 인프라가 없어 고생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1500여개 벤처기업은 대학 연구소 대기업들이 길러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은 벤처에 원천 기술과 인력을, 대기업과 제약회사는 자금을 공급한다. 미국 벤처기업의 1차 고객은 대기업이다. 대형 제약회사는 벤처가 개발한 초기 기술이나 제품을 사들이거나 아예 벤처기업을 인수한다. 개발초기부터 벤처와 대기업이 제휴를 맺고 상품개발을 하는 사례도 많다.
미 정부도 1개 바이오벤처업체에 5만∼50만달러까지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국가가 바이오벤처 육성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바이오 벤처업체는 대기업 제약회사 등 ‘큰손 고객’이 없다. LG화학 SK 제일제당 삼천리제약 등 바이오산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기업의 올해 벤처 투자금을 합쳐봐야 1000억원 미만이다.
유전자 조절 기술에 관한 핵심 기술을 보유한 툴젠의 김진수 사장은 “실험실 하나 구하는 데 7개월 걸리고 정부출연 연구소의 자료도 이용하기 어렵다”며 “이런 풍토에서 성공할 벤처 기업은 1%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덕연구단지의 크리스탈지노믹스의 경우 연구원들이 단백질 구조를 분석하기 위해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대전의 생명공학연구소 장비를 쓰고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서울대 농대에 있는 고가 분석기를 이용하기 위해 수원에 올라갈 정도로 고생을 하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이 바이오벤처의 성격을 모르고 조급하게 수익을 요구, 10여개 벤처업체는 중요한 연구는 미룬 채 건강식품을 만들고 있다.
연세대 프로테옴연구센터 백융기 교수는 “한국 바이오산업의 열쇠는 벤처기업에 달려있다”며 “기술력이 검증된 벤처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위용·이병기기자·이영완동아사이언스기자>viyonz@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