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게놈지도 발표 이후 영국 일본 중국 등 바이오 후발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유전자 패권경쟁’이 노골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연구소나 기업차원의 경쟁이 아니다. 정부가 전면에 나서 총력전을 펴고 있다. 이들은 게놈국제컨소시엄에 참여하면서 생명의 비밀을 여는 바이오산업을 장악하는 나라가 21세기를 이끌 것이라는 사실을 체득했다.
후발 선진국들의 공통적인 전략은 ‘집중화’. 바이오산업의 범위가 워낙 넓어 한정된 인력과 연구비를 모든 분야에 투입해서는 미국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 자신들의 강점이 있다고 판단되는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중국은 98년 ‘외국인이 중국인의 유전자를 연구하려면 중국정부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유전자 패권경쟁에서는 서구에 지지 않겠다는 중국의 자존심을 드러낸 것.
▽바이오 산업으로 영광 찾자〓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은 바이오산업을 통해 ‘대영제국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세계 최고의 기초과학 기술을 갖고 있는 대학을 전면에 내세우고 정부와 기업이 이를 밀어주고 있다.
또 영국의 바이오산업에 대한 지원은 철저히 ‘집중’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정부의 바이오에 대한 연구비 지원은 연간 1조원. 1조원의 연구비 중 70% 가량이 대학에 지원되며 9개 대학이 연구비의 50%를 가져간다. 뛰어난 연구자가 있는 곳에 연구비가 집중된다. 산업계의 연구비도 7개 대학에 집중된다
2월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을 방문했을 때 대학 곳곳에서는 신축공사가 한창이었다. 신축건물의 대부분은 ‘사이언스 파크’라 불리는 대학기업(실험실창업)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 이곳엔 60개의 바이오벤처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 중 하나인 제미니 지노믹스사는 작년 7월 나스닥에 상장했다. 영국의 MIT라 불릴 정도로 공학이 강했던 런던 제국대학도 최근 대학 중심부에 생명과학연구센터를 설립, 한 달에 한 개꼴로 바이오벤처기업을 입주시키고 있다.
영국 내 48개 대학의 외곽에는 대학과 공동연구를 희망하는 대기업이 들어선 사이언스 파크가 형성되고 있으며 1000개의 바이오벤처가 입주해 있다. 이처럼 대학이 벤처와 연결돼 인력유출 없이 대학이 확대되는 것을 영국에서는 ‘케임브리지 현상’이라고 부른다.
스코틀랜드 지역의 바이오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는 던디대에는 50개의 산학협동 연구그룹이 입주한 웰컴 트러스트 바이오센터가 있다. 웰컴트러스트는 자산만 225억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 의학연구분야 민간지원단체. 특이한 것은 베링거 잉겔하임, 노보노르디스크 등 경쟁관계에 있는 5개 제약회사가 한 연구그룹에 연구비를 사이좋게 지원하고 있는 점.
▽아시아의 바이오 패권은〓바이오산업의 중요성을 늦게 알아차린 일본은 단시일 내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정부 예산 8000억원이라는 거금을 쏟아 부으며 ‘일본 주식회사’ 특유의 시스템인 ‘관―민협력체제’를 가동시켰다.
일본은 바이오 벤처가 활성화되지 못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제약회사나 굴뚝산업의 대기업들이 바이오산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다케다약품, 야마노우치 제약 등 20여 제약회사는 최근 컨소시엄을 구성, 효고(兵庫)현에 5000억원을 들여 전용 연구시설을 만들었다. 매년 1000억원의 연구비를 투자, 내년 5월부터 연구를 시작할 계획이다.
제약회사뿐만이 아니라 다카라주조, 히타치, NEC, 미쓰비시 화학 등 다양한 기업이 게놈프로젝트와 연관된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다카라주조는 셀레라에 필적하는 고속 게놈해석센터를 개설하고 있고 NEC와 후지쓰는 발달된 전자산업의 장점을 살려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해독하는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선진국 중 게놈연구 국제컨소시엄에 참여한 중국은 적어도 바이오에서는 한국을 적수로 여기질 않는다. 일본과 미국을 따라잡을 야심을 갖고 있다.
인간게놈 국제컨소시엄에서 3번 염색체를 해독한 중국 베이징게놈연구소는 100대 이상의 염기서열해독기를 갖춰 영국의 생거센터와 미국의 워싱턴대학 게놈연구소와 같은 서방 유명연구소에 버금가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중국은 최근 돼지와 벼 게놈해독을 시작했다. 중국의 인간유전자원을 활용한 연구는 청각상실 유전자와 치아손상 유전자를 찾아내는 등 성과물이 벌써 나오고 있다.
<런던·케임브리지·에든버러〓이영완 동아사이언스기자·이병기·정위용기자>
pus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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