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에서는 신약 개발을 ‘1만분의 1의 도박’이라고 한다. 그만큼 성공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이 2005년 개발한 신약인 항궤양 치료제 ‘레바넥스’도 이런 인고(忍苦)의 과정을 겪었다. 15년여가 걸린 신약 개발에 동원된 연구개발(R&D) 인력과 임상시험 대상 환자는 줄잡아 3000명을 헤아린다.
1991년 3월 경기 군포시에 있던 유한양행 중앙연구소는 ‘무모한’ 제안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그 제안은 약효가 빨리 나타나는 위산분비 억제제를 만들자는 것. 기존의 약품은 당장 효과가 나지 않는 데다 장기간 위산 분비를 억제해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외국에서도 못 푼 숙제를 우리가 할 수 있겠느냐”며 반대 여론이 거셌다. 게다가 당시는 한국에서 이렇다 할 신약이 전혀 나오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회사 측은 “곧 대체 약물이 필요한 시대가 올 것”이라며 연구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연구진은 회의적인 시각을 뒤로하고 기초물질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여러 약물 데이터를 돌려보던 연구진은 ‘YH(유한양행의 영문 약자)1238’이라는 탄소화합물에 주목하고 전임상시험에 들어갔다. 하지만 기대한 만큼의 약물 특성을 보이지 않고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발견됐다. 이미 3년을 허비한 연구진의 실망은 컸다.
당시 연구에 참여했던 유한양행 의약공정 연구실장 김재규 박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위궤양치료제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원 대부분이 심한 스트레스로 위장병에 걸려 고생을 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연구진은 포기하지 않았고 1995년 새로운 물질 ‘YH1885’를 개발했다. 연구진은 또 하나의 시련과 마주쳤다. 물질의 인체 흡수력이 너무나 떨어졌던 것. YH1238의 실패 경험이 있었던 연구진에 또다시 회의감이 밀려 왔다.
그러나 10년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제형(약의 제조 형태)을 바꿔 실험을 거듭하던 연구진은 3번의 실패 끝에 2002년 네 번째 모형을 만들어냈다. 이후 3년간 임상시험을 거듭한 끝에 유한양행은 2005년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신약 제조 허가를 받았다. 세계 최초로 단기 치료가 가능한 위산억제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김 박사는 “15년여의 개발 과정에서 구원투수처럼 나타난 동료들의 믿음과 최고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원이 신약 탄생에 큰 힘이 됐다”며 “레바넥스 개발로 얻은 자신감은 앞으로의 유한양행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글로벌 보건기업으로 발돋움 2014년엔 매출 1조7000억 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1등 보건기업이 되겠습니다.”
유한양행은 창립 88주년을 맞는 2014년에 매출 1조7000억 원, 영업이익률 15%라는 목표를 향해 전 임직원이 뛰고 있다. 이를 위해 사내외적으로 ‘베스트 유한, 베스트 파트너’라는 슬로건도 만들었다. 김윤섭 유한양행 사장은 “최고의 유한을 만들어서 고객, 협력사, 종업원, 주주, 사회 등 모든 유한 가족들에게 최고의 동반자가 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유한양행은 성장동력 강화를 위해 블록버스터급 제품을 확보하고 신규 전략사업을 발굴하기로 했다. 또 시장지향적인 연구개발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차별화된 신제품 개발과 신약 및 신제품의 파이프라인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사업 역량을 키우기 위해 다각적으로 신규 수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해외 전략 거점을 육성하는 데도 힘을 모으고 있다. 또 수익지향적인 사업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원가 구조 개선과 사업 및 제품 포트폴리오 강화, 고객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고객중심 시스템 확충도 주요 과제로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김 사장은 “협력의 노사문화를 바탕으로 실행중심적인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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