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위가 단순히 홍보용이거나 또는 책임회피를 위한 시도가 아니기를 바라면서, 대책과 관련한 생각의 일단을 피력한다.
▼공교육의 내실화 선행돼야▼
세계 최고수준의 교육열, 학력 위주의 사회분위기 속에서 명문대을 향한 맹목적인 추구는 과외의 확산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정말 대책이 없다는 한탄이 들려오기도 한다. 원론적인 면에서
무엇보다 공교육의 내실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있다.
A, B, C 라는 학생의 수학성적이 100점 만점에 각각 100점, 70점, 40점이라고 하자. 이러한 결과를 고려하여 각자의 수준에 맞는 교육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 A에게는 칭찬과 함께 심화
과정이 교수되고, B에게는 틀린 부분에 대한 적절한 지도가, C에게는 기초학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조치가 내려져야 한다.
아마도 헌신적인 학급담임이나 교과 담임교사는 비록 형식적이나마 성적에 대해 상담을 해주기도하고 칭찬 또는 질책과 격려를 해줄 것이다. 그러나 한 교사가 담당하는 학생수를 고려하면,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성적 향상을 위한 교육적 지도는 불가능하다.
대부분 학업성취결과는 생활기록부에 올라가는 자료로만 활용하는 실정임을 부인할 수 없다.
▼과외현장은 개별적 지도 가능?▼
개별적인 지도를 해줄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바로 과외현장이다. 소수정예로 한반에 10명정도의 학생들을 지도하는 수학학원의 사례를 들어보자. 매일 시험을 보고 틀린 문제를 해설해주고 숙제를 내주고 숙제검사를 한다. 무언가 새롭고 특별한 것을 가르친다기 보다는 학생들이 스스로 하지않으면 안되게 만드는 것이다. 이래도 공부안하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겠고 다른 변인도 생각해야겠지만, 학생수가 10여명인 학원과 40∼50명인 학교중에서 경쟁우위에 있는 곳은 어디겠는가.
그렇다면 공교육 내실화의 본질은 일차적으로 학업의 개별화를 어느정도까지 실행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빠른 시일내에 학급당 학생수를 30명 이내로 줄이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예산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자립형 사립학교를 인정하여 공교육에 대한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한편 단기적으로는 학교에서 개별적인 지도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방과후에 학생들이 20명이내로 모여 원하는 교과에 대해 한시간이라도 교실에서 문제를 풀어보고 개별적으로 선생님께 질문하고 선생님은 학생의 학업수준을 파악하여 지도하는 장면이 연출될 수는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한 재정적인 부담은 개별지도를 원하는 학생측에서 감당해야 하겠지만,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다른 차원에서 지원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일률적으로 강제되는 기존의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이라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다만, 개별지도에 대한 욕구를 공교육이 수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아이의 성적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가 좌절 될 때 학부모는 그 결과를 수용하기 보다는 교육담당자에게 책임전가를 하기 쉽고, 다른 분출구로서 과외를 생각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학교 교과수업 위축정책은 재고돼야▼
과외 자체를 비판할 이유는 없다. 학교와 과외에서의 중복적인 학업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학교내에서 과외 욕구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학교교육 활동이 배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학교의 교과수업을 위축시키는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과외가 성적향상에 효과가 있는가하는 점이다.
정말 학생수가 적은 만큼 개별지도가 잘 이루어지고 이것이 학교공부와 결합하여 시너지효과를 갖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실험적 연구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다양한 견해가 나오기 마련이다.
성적 향상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주장도 있고, 학교공부를 등한시하게 되어 오히려 부정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성취의 기쁨' 느끼게 하자▼
가장 중요한 것은 과외를 받는 학생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
느냐이다. 이 점을 확대해석한다면 학업성취의 열쇠는 과외여부가 아니라 학생들의 학업자세와 노력여하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과외든 학교공부든 마찬가지이다.
고액과외나 쪽집게 과외를 받은 학생은 명문대학에 많이 들어갔을까. 특별과외를 받으면 성적이 특별히 향상될 것이라는 생각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비유하자면, 쪽집게운명철학자가 용해 보이는 것은 틀린 경우는 숨겨지고 맞는 경우에만 드러나는 데 이유가 있을 것이다.고액과외교사가 인기관리를 위해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에 대한 지도를 포기하는 사례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아마도 돈으로 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시험성적일 것이라는 생각은 고액과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 막연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성취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가는데 힘을 쏟았으면 한다.
박윤명/동아닷컴 넷칼럼니스트 pym78@m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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