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근 언론 등에서 논의되는 백양사건을 보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이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포르노를 찍은 백양이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방송출연을 해도 되는 안되는지에만 쏠려 핵심을 비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본질은 포르노가 아닌 사이버 익명성에 의한 개인정보유출>
이 사건의 본질은 몰래카메라도 포르노도 아니다. 본질은 사이버상에서의 사생활정보의 무책임한 유포이며 그 무책임함의 뒤에는 사이버의 '익명성'이라는 특수성이 있다는 점이 다. "네게 없는 것을 나는 구했어. 좋아. 네게도 보여줄께." 식의 무책임한 과시욕, "내가 뭐 이런 것 조금 잘못해도 찾아낼 수 없을거야"라는 사이버상의 아이덴티티 추적의 허점과 이를 이용한 심리의 산물이 백양사건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사이버 세계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이 익명으로 일어난다. 대부분의 아이디가 영문이고 기본적으로 익명을 사용하도록 구현이 되어 있다. 때로는 자기자신을 숨기고 싶을 경우도 적지않아 사이버 커뮤니케이션은 거의 익명으로 일어난다.
상대와 대화를 하면서도 그가 누구인지 묻지도 않으며 몰라도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게 대부분 네티즌의 생각이다. 오히려 약간의 비밀은 언제나 자극이 될 수 있고 상대에게 호기심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사이버 세계는 멀티 아이덴티티사회>
그러나, 사이버 세계도 사회이다. 따라서 활동을 계속하다 보면 아무리 익명으로 시작했더 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그 이름에 아이덴티티(정체성)가 부여된다. 사이버 아이덴 티티가 형성되는 것이다. 한 커뮤니티에서 아이덴티티가 형성되면 커뮤니티를 탈퇴하거나 이동하는데 따르는 부담(전환부담)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커뮤니티를 빠져 나가기는 어렵 다. 따라서 커뮤니티 사이트는 회원들이 다른 커뮤니티로 이동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환부담을 키우는 데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커뮤니티의 전환부담이 크다고 하더라도 필요에 의해 커뮤니티의 전환이 이루어지며 사이버 아이덴티티는 그가 원하는 곳에서 그가 원하는 기간만큼만 유지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실제와 사이버 아이덴티티의 차이점은 실제 아이덴 티티는 태어날 때 생겨서 죽을 때 없어지지만 사이버 아이덴티티는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어느 정도의 노력으로 만들고 또 없앨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이버 아이덴티티는 동시에 여럿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궤변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이버 아이덴티티는 확인이 불가능한 또는 미확인 아이덴티티(Unidentified Identity)인 셈이다. 따라서 잘못한 사람이 있어도 그가 누구인지 밝혀내기가 어렵고 심지어는 한사람이 여러 사람 행세를 해도 알 수 가 없는 사회가 사이버 세계이다.
이에 따라서, 성인물, 혐오물 등의 불건전한 정보나 루머 등의 무책임한 정보의 대담한 유포가 자유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익명으로 사이트를 개설하고 어설픈 성인물을 주워 모아서 제공함으로써 자신을 과시하며 심지어는 광고수익까지 만들려는 젊은이들을 많이 본다.
이들은 사이트가 문제가 되면 가차없이 버리고 또 다른 곳에서 다른 아이덴티티로 얼마든지 홈페이지를 개설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부담없이 이런 하급정보를 유통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체적으로 사이버 세계를 더럽히고 있을 뿐 아니라, 이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정화비용(정보통신윤리위원회. 사이버경찰 등의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다.
<사이버 익명은 藥일수도 毒일수도>
그러나 이것이 과연 나쁜가? 그렇다면 사이버 세계에서도 익명을 허용하지 않아야 하는가?
최근 클린턴 대통령의 사이버보안 담당 최고 자문관은 "우리는 사이버 공간에서 안전지대를 확보해야 한다. 안전한 인터넷은 무장경관에 상응하는 장치를 갖춰야 하고, 어떤 사람도 익명으로 활동해서는 안된다."는 극단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익명의 부작용을 제거하기 위해 반드시 실명만을 사용하도록 제한하는 것은 방법도 쉽지 않지만 바람직하지만도 않다. 익명성으로 인해 생기는 사이버 커뮤니티의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익명으로 커뮤니티에 참여하게 되면 실수나 잘못에 대한 부담이 적어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참여가 가능하며 실사회에서 보여주지 못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많다. 필자의 경우도 만일 익명으로 칼럼을 쓴다면 더욱 과감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하나 결정적으로 익명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실명만을 사용했을 경우 개인정보가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의 노출은 스팸메일 등 사소한 불편함에서 사기도용 등의 중대한 범죄로까지 이어진다.
사이버 세계도 나름대로 자연발생적인 사회이며, 그 곳에는 그 곳 나름대로의 룰이 있다.
약간의 단점과 부작용이 있다고 자연발생적인 룰 자체를 인위적으로 수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개인의 인격을 황폐화시키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저급 정보를 방치하고 견제를 포기할 수는 없다.
사이버의 익명성과 멀티 아이덴티티를 보장하면서 저급정보도 완벽히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은 불가능할 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지혜를 모은다면 사이버의 장점이 크게 손상되지 않으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을 견제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이버 시스템을 정착시켜 나가는 것이 사이버 세대의 프론티어에 선 우리가 해결해야 할 큰 숙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진우 대표 약력
- 1957 서울생
- 서울고
- 서울대 자연대
- New York University 대학원(이학석사)
- 동 대학원 박사수료(컴퓨터)
- Intercontinental Trade USA, President
- (주)B.G.상사 대표이사
- 현 링크플러스(주)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