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MS회장은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 전시회(CES·Consumer Electronic Show)’에서 올 연말 시판할 게임기 X박스의 시제품을 처음 공개했다. 시제품은 검은색 X자 박스 형태로 높은 사양을 자랑하듯 화려한 그래픽을 선보였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했다”는 게 참관자들의 평이다.
올 연말에 벌어질 ‘전쟁’은 소프트웨어와 운영체제(OS)에 이어 게임시장까지 석권을 노리는 MS와 게임기 시장 맹주자리를 수성(守城)하려는 소니의 한판 싸움.
현재 세계의 비디오게임기 시장규모는 연간 200억달러(약 24조원)에 달한다. 만약 게임기 전쟁에서 승리하면 MS는 수익창출 뿐만 아니라 현재의 ‘황제’ 자리를 더욱 확고히 하게 된다. 게임의 발전이 OS와 프로세서(CPU)의 개발을 이끄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MS는 소니의 아성을 깨기 위해 올해 5억달러(약6000억원)를 홍보비로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승패가 ‘기술’과 ‘재미’에서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 면에서는 후발주자인 MS가 우위에 서 있다. X박스는 지금까지 나온 비디오게임기 중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펜티엄Ⅲ 733㎒ CPU를 갖춰 성능이 웬만한 가정용 PC를 능가한다. 메모리도 64MB로 플레이스테이션2(약칭 플스2)의 32MB를 앞선다. 그래픽 프로세서(250㎒) 역시 플스2의 2배 가까운 속도를 자랑한다.
X박스는 특히 지금까지 어떤 게임기도 시도하지 않은 하드드스크를 장착했다. 8기가바이트의 하드디스크는 게임의 구동시간을 약 8초로 줄여준다.
PC게임의 조이스틱에 해당하는 컨트롤러의 경우도 나중에 나온 X박스가 약간 앞선다는 게 중평. MS는 컨트롤러의 디자인과 버튼 배열을 결정하기 위해 1000여종의 모델을 만들어 5000여명에게 테스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소니는 다양한 게임과 엄청난 보급대수를 기반으로 반격에 나설 예정이다. 플스2는 지난해 세계적으로 200만대 이상이 팔렸다.
소니는 “게임기의 성패는 게임 자체의 재미에서 가려진다”는 입장이다. 플스2의 경우 코나미, 남코 등 기라성 같은 일본의 게임제조업체들이 서드파티(게임 제작사)로 참여하고 있다. 철권, 파이널판타지 등 블록버스터 게임도 100여개에 달한다.
그러나 X박스의 경우 EA(Electronic Arts)를 제외하고는 세계적 명성의 게임소프트웨어 제조업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MS측은 “50여개 일본 게임업체들이 X박스용 게임제작에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코나미 외에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업체는 별로 없는 형편이다.
객관적인 측면에선 X박스가 약간 우위에 있는 듯 하다. 플스2와 거의 2년의 시차를 가지고 있기 때문. 그러나 게임의 목적이 ‘재미’에 있다는 소니의 주장도 간과할 수는 없다. 어찌됐든 두 게임기는 게이머들에게 더욱 실감나는 게임 세계를 소개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결국 양사가 벌이는 ‘전쟁’의 승리자는 게이머들이 아닐까.
<문권모기자>afric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