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8개월째인 김나영씨(가명·여·28)는 요즘 후회 막심이다. 결혼 3개월전 샤워를 하다가 항문에 살이 볼록 튀어나온 것을 보고 ‘치질(痔疾)’인줄 알았다. 결혼 초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임신 이후 배가 부르면서 치질이 심해져 변을 볼 때 피가 심하게 나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다. 당장 수술이라도 받고 싶지만 ‘혹시나 애가 잘못될까’하는 걱정에 출산 이후만을 기다리고 있다.
드러내기 부끄러운 여성의 치질. 증세가 뚜렷해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 고민하다 병을 키운 뒤 병원에 가는 여성이 많다. 병원을 찾기까지 10년 이상 참았다는 여성이 55.8%나 된다는 조사결과가 있을 정도. 그러나 남성은 34%.
◇ 임신-변비-다이어트가 주원인
▽여성치질〓의학적으로 치질은 크게 치핵(痔核) 치루(痔漏) 치열(痔裂)로 구분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치핵을 치질로 부른다. 치질(치핵)은 항문 안쪽의 혈관이 늘어나 그것을 덮고 있는 점막이 함께 늘어나면서 밖으로 빠져나온 상태를 뜻한다. 전 인구의 25%, 성인 여성의 40∼50%가 앓고 있을 정도로 흔하다. 항문내 치상선을 기준으로 안쪽 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암치질(내치핵), 바깥쪽이면 숫치질(외치핵). 남녀 발생 비율은 6대4로 남성이 많지만 암치질은 남성에게, 숫치질은 여성에게 많다. 이는 변비 임신 출산 등으로 숫치질의 원인인 치열이 여성에게 두 배 정도 많기 때문.
▽변비와 치질〓만성변비 환자의 20% 정도는 치질 환자. 변비 환자는 변을 보기 위해 정상인보다 항문 주위에 훨씬 많은 힘을 주고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다.
또 딱딱한 변이 항문관을 통과하면서 항문 혈관에 상처를 준다. 이는 모두 혈관정맥을 확장시키고 결국 치질로 이어진다. 여성에게 변비가 많은 이유는 여성의 황체호르몬이 장운동을 저하시키기 때문. 또 무리한 다이어트로 식사량을 너무 줄이는 것도 변비의 원인.
◇ 쪼그려 앉지 말고 좌욕 필요
▽임신 출산과 치질〓임신 때 치질이 생기는 것은 체내 황체호르몬의 농도가 변화하면서 항문 조직이 연해져 쉽게 출혈이 되고 부어 오르기 때문. 특히 임신 말기에 자궁안의 태아가 커지면서 항문에서 심장으로 올라가는 피(정맥혈)를 압박해 원활한 혈액순환을 막는다. 피의 흐름이 정체되면 피가 모이고 결국 약한 혈관이 터지면서 없던 치질이 생기거나 심해진다. 여성치질 환자의 27%가 임신 도중 치질이 생길 정도. 치질을 앓고 있는 여성은 임신전 치료를 받는 것이 상책. 임신부의 경우 40도 정도 물에 좌욕을 하는 등 보존적인 치료를 하지만 심한 경우라면 수술을 피할 필요는 없다. 임신 3개월 이후 치질수술은 태아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산모가 출산할 때도 항문 안쪽의 혈관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잘 터진다.
▽생활습관과 치질〓쪼그리고 앉아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것도 항문 혈관의 압력을 높여 치질을 일으킨다. 지난 5월 여성치질 수술환자 133명을 조사한 결과 가사생활을 하면서 치질이 생긴 경우가 30.5%로 가장 많았다.
(도움말〓경희의료원 일반외과 이기형교수 02―958―8030, 이화여대 동대문병원 일반외과 박응범교수 02―760―5165)
<이호갑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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