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모리 대학 마르쿠스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폴리브로미네이트 바이페닐(PBB)이 고농도로 체내에 축적된 여성에게서 태어난 여아들은 정상적인 아이들의 초경시기보다 1년 정도 빨리 월경을 시작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해 12월 미국 ‘역학(疫學)’지에 실렸다.
마르쿠스 교수는 “PBB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작용을 모방해 성 발달을 가속화시킨 것”이라고 밝혔다. PBB는 절연체로 사용되는 화학물질로, 다이옥신이나 DDT와 함께 인체 내분비 계통을 교란하는 환경호르몬으로 분류된다.
1973년 미국 미시간주에서는 젖소에게 실수로 PBB를 먹인 일이 있었는데, 당시 약 4000명이 우유나 유가공품을 통해 체내에 PBB가 축적됐다.
마르쿠스 교수의 조사 대상은 PBB가 체내에 축적된 여성들이 낳은 327명의 여아들이었다.
조사 결과 산모의 자궁 내 PBB 농도가 높았던 여성이 낳은 여아를 모유로 키웠을 경우 초경이 만 11.6세에 시작됐다. 반면 자궁 내 PBB가 높지 않았던 산모가 낳은 여아들은 만 12.2∼12.6세에 초경이 시작됐다.
환경호르몬이 여아들의 사춘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주장은 97년 처음 제기됐다. 미국의 소아과 의사인 허먼―기든스 박사는 당시 미국 ‘소아과학’지에 만 3∼12세 사이의 미국 여자아이 1만7077명을 조사한 결과 가슴이 나오고 음모가 나는 사춘기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약 1년 정도 더 빨리 시작됐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허먼―기든스 박사는 당시 사춘기가 앞당겨진 것이 환경호르몬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추정했었다.
그 후 99년에는 과학잡지 ‘네이처’에 캔이나 병 두껑 안쪽에 코팅되는 플라스틱인 비스페놀A를 새끼를 가진 쥐에게 먹였더니 나중에 태어난 암컷의 성 발달이 빨라졌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또 지난해 말 만 8세 이하에서 가슴과 음모가 발달하는 성조숙증 여아들도 체내 환경호르몬 농도가 높았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다.
연구결과 평균 만 2.6세인 푸에르토리코의 성조숙증 여아들은 혈액 내 프탈레이트 농도가 정상 아동에 비해 6배나 높게 나왔다.
현재 의학계에서는 특별한 원인 없이 사춘기가 빨라지는 데 대해 환경호르몬 외에 비만으로 인한 렙틴 단백질이나 호르몬의 증가, 또는 선정적 TV방송프로그램이나 의붓아버지의 영향 같은 심리적 요인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한편 99년 한국과학기술원의 조사에서도 산모 59명의 초유에서 환경호르몬인 다이옥신이 다량 검출됐다. 국내에서는 아주의대 홍창호 교수팀이 93년 연세대생 776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1년 간 초경 연령이 7개월 정도 빨라졌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지만 환경호르몬과 연계한 연구는 아직 없다.
<이영완동아사이언스기자>pus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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