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같은 노력이 쌓인 결과일까. 인류의 수명은 역사와 함께 계속 늘어났다. 20세기의 첫해 미국인의 평균수명은 47세였지만 99년엔 76세로 늘었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가 집계한 세계인의 평균수명은 66세, 최장수 노인은 121세였다.
일부 과학자들은 21세기엔 인류가 노화의 수수께끼를 풀 것이라고 말한다. 적어도 인간의 수명만큼은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많다. 영국의 미래재단은 2010년 태어나는 사람의 평균수명을 120세로,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아메리카는 2050년 인류의 평균수명을 150세로 예언하고 있다. 만약 그 예언이 현실이 될 경우 금세기 후반기의 지구는 노인들 세상이 되지 않을까. UN 인구국은 최근 세계 인구 중 60세 이상의 비율이 지난해 9.9%에서 2050년 22.1%가 될 것으로 예견했고 미국의 인구학자들은 미국의 100세 이상 노인이 1990년 3만7000여명에서 올해 10만명, 2025년 40만명, 50년 80만명으로 늘 것으로 보았다.》
◇50년뒤 평균수명 150세 전망◇
▼몇살까지 살 수 있나▼
지구에서 사람보다 오래 사는 동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코끼리거북이 180살, 황소거북이 200살 정도 살고 나머지는 대부분 단명한다. 노화를 거치지 않는 생물도 있는데 무성 말미잘(Asexual Sea Anemones)은 몇십 년 동안 수조에 넣어둬도 늙지 않는다.
이들과 비교하면 21세기 중반 기껏 120세까지 살게 되는 인간은 과연 ‘장수(長壽)’한다고 할 수 있을까. 1938년 옛소련의 의학자 보고모레테스는 모든 생물은 성숙기의 5∼6배 살 수 있다는 이론을 내놓았는데 사람의 성숙기를 20세로 친다면 100∼120세까지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생체 구조의 기본 골격을 이루는 탄소의 수명이 100년 정도이기 때문에 사람의 수명도 100년을 넘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다.
21세기에 인류가 노화(老化)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겠지만 노화를 멈추거나 다시 젊어지게 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현단계 연구의 한계다. 다만 여러가지 질병의 정복으로 수명이 늘 수는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미국 캘리포니아기술연구소의 시무르 벤저박사는 사람이 무려 1200살까지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생체시계를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벤저박사는 최근 병 속에 모아둔 파리떼에서 다른 파리보다 30% 이상 길게 사는 돌연변이 파리를 발견하고 이 파리의 유전자를 추출했다. 그리고는 이 유전자에 969살까지 살았다는 유대인 족장 메투셀라의 이름을 붙였다.
“사람에게도 이런 유전자가 있을 것이며 이 유전자를 투여받으면 늙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배아나 신생아의 유전자를 처리하면 1200살까지 사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합니다. 삶에서 생체시계가 무의미해지죠. 대신 삶이 하나의 시나리오가 되는 겁니다.”
◇체내 활성산소가 노화 주범◇
▼노화를 보는 두 눈▼
그러나 벤저박사의 이론은 아직 과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대신 두 학설이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노화가 유전, 환경 등의 다양한 원인 때문에 우리 몸의 기능이 서서히 떨어지는 것이며 특히 활성산소가 노화의 주범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들이마시는 산소 가운데 1∼4%는 인체에 유해한 활성산소로 남게 되고 이것이 특정 단백질과 결합해 염색체를 파괴하는 게 노화라는 것이다.
미국 에모리대의 두 왈라스박사는 “세포가 영양소를 에너지인 ATP로 바꾸는 과정에서 활성산소가 세포 안에서 배터리 역할을 하는 미토콘드리아를 파괴한다”면서 “이때 다른 미토콘드리아가 분열해 빈 자리를 채워주는 과정에서 변이가 일어나고 변이된 미토콘드리아가 쌓여 세포가 죽는 것이 노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분간은 모든 세포의 미토콘드리아를 복구할 수 없기 때문에 노화의 정복은 힘들다”면서 “활성산소를 없애는 비타민 C와 E를 듬뿍 먹는 게 현재로선 최선의 노화 방지책”이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분자생물학자’들은 이미 노화의 정복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이들은 염색체 끝에 달린 텔로미어의 길이가 줄면서 노화가 이뤄지며, 따라서 텔로머라제를 통해 텔로미어의 길이를 늘이면 노화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또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성을 손꼽아 기다린다. 100세가 넘는 노인들의 유전체와 평균 연령 사람의 유전체를 분석해 그 차이를 알면 오래 사는 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아직은 누가 옳은지는 모른다. 대부분 과학자들은 ‘노화의 영역에서 과학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말한다. 이론을 떠나 가장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노화를 늦출 수 있는 방법은 식이요법.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면서 식사량을 30∼50% 줄이면 수명이 평균 30%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죽은 뇌세포를 살린다◇
▼건강한 노년▼
노화의 비밀을 풀고 인간 수명을 늘리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얼마나 정정하게 노년을 보낼 수 있느냐는 문제다. 과학자들이 내놓는 전망은 비교적 밝다.
지난해 과학기술정책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이 국내 전문가 183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09년 자신의 피부를 이용한 인공피부와 함께 인공 건(腱) 근(筋)조직이 개발되고 △2012년 태아신경세포의 배양 및 저장기술 개발로 신경세포 이식이 실용화되며 △비슷한 시기에 인공눈이 개발되고 △2013년엔 노화억제 유전자가 개발된다는 등의 전망이 나왔다. ‘노화의 정복’에 앞서 ‘노인병의 정복’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노인의 정정한 삶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치매 뇌졸중 등 뇌질환. 최근 과학자들은 베타 아밀로이드와 C단 단백질 등이 치매의 원인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치료법 연구에도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뇌세포는 한번 죽으면 재생되지 않아 죽은 뇌세포에 대해 손쓸 방법이 없다고 여겨왔지만 몇 년 동안 상황이 바뀌었다. 98년 스웨덴 예테보리대 연구팀은 암 환자의 뇌에서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해마 부위의 뉴런이 계속 분열하는 것을 발견했고 동물실험에서 뇌세포를 투여하면 죽었던 뇌세포가 살아나는 것이 확인됐다.
미국 하버드대의 에반 스나이더박사는 “20년 안에 뇌이식은 불가능하겠지만 뇌세포 이식은 다른 문제”라고 말한다. 골수 안의 조혈모세포가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을 만들 듯 뇌세포도 간(幹)세포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며 이것을 발견해 손상된 뇌에 이식하면 죽은 뇌세포를 되살릴 수 있다는 것. 배아에서 뇌기간세포를 떼어내 배양한 다음 이식하는 방법과 어른의 뇌에서 직접 기간세포를 찾아내 이식하는 방법이 있다.
스나이더박사는 “다만 사람의 뇌세포가 이식되면 공여자의 기억이 수여자의 기억을 지워버리거나 두 사람의 기억이 공존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근육세포의 재생에도 희망적 실험이 있다. 하버드대의 나디아 로젠탈박사가 쥐의 유전자에 성장인자인 ‘IGF1’를 넣었더니 늙은 뒤에도 근육의 양과 힘이 줄지 않는 것을 발견한 것. 21세기엔 이와 함께 인공 장기의 개발과 기간세포 이식, 유전자치료법 등으로 ‘병없는 노인’의 세상에 성큼 한발 다가설 것이다.
◇젊음은 부자들만의 것?◇
▼과학은 공정하지 않다▼
이런 혜택을 받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강자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는 과학의 혜택을 골고루 미치게 하는 데에 별 관심이 없다. 선진국의 부유한 사람들만 ‘정정한 노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후진국 사람이나 빈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노화연구의 ‘모르모트’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인공피부를 이식해 30대의 얼굴을 갖추고 뇌세포 이식으로 ‘총명’하기까지 하며 100살의 경륜도 갖춘 노인이 아들뻘에 해당하지만 온갖 고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제 얼굴의 70세 노인과 한 동네에 살 수도 있다. 외모만으로는 도저히 나이를 추측할 길이 없고, 나아가 인간관계의 모양새도 어떤 식으로든 달라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부유한 노인들 역시 육체적 한계는 벗어나도 정신질환의 굴레를 벗기는 힘들 것 같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1세기의 질병으로 지정한 우울증이 특히 주요병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급증하는 노인들이 80, 90대의 ‘젊은 노년’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등 사회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각종 욕구불만과 우울증 등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치매에도 걸리지 않고 멀쩡한 정신으로 자신의 무기력한 모습을 지켜봐야 할 때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이 권태감과 무력감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키워드/텔로미어▼
인간의 수명을 사실상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진 텔로미어(Telomere)는 염색체의 양끝 부분에 달려 있는 단백질 사슬. 염색체를 보호하는 뚜껑 구실을 하며 ‘염색체의 고리’라고도 불린다. 분자생물학자들은 “사람의 세포는 50∼100번 분열하고 수명을 다하는데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가 점점 닳고 일정 길이 이하가 되면 세포분열이 멈추며 이것이 노화의 시작”이라고 설명한다.
과학자들은 암세포에서 발견되는 텔로머라제(Telomerase)가 텔로미어의 길이를 정상으로 유지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98년초 미국 제론사와 텍사스대 연구팀은 ‘네이처 제네틱스’에 75번 분열하고 죽는 정상세포에 텔로머라제를 투여했을 때 220번 분열했지만 염색체 이상 등 암의 특징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분자생물학자들은 드디어 노화의 열쇠를 찾았고 불로장생의 꿈이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흥분했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자들은 실험실에서의 결과와 인체의 결과는 다를 것이며 텔로머라제가 인체 내에서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또 무엇보다도 뇌 근육세포 등은 분열하지 않는데도 노화하는 것은 텔로미어가 노화와 무관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실험실에서 텔레머라제로 처리한 세포가 암세포가 되지 않으며 텔로미어가 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실험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국내에선 성균관대 생명과학연구소의 이한웅교수가 텔로머라제를 만드는 유전자를 없앤 쥐의 수명이 다른 쥐의 수명 2년보다 평균 ⅓ 짧다는 것을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하고 연구 결과를 과학전문지 ‘셀’에 발표했다.
이런 실험결과들 덕분에 지난해 복제양 돌리의 조로(早老)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 어미양으로부터 물려받은 세포의 텔로미어가 어미 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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