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합니다]'대동맥 파열' 김재팔씨

  • 입력 2001년 3월 13일 18시 50분


“신이 데리고 가려는 걸 의사 선생님이 막아 줬습니다.”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 11층 병실에서 퇴원을 앞두고 있던 김재팔씨(48·사진)는 ‘신이 내린 남자’.

3일 밤 푸닥거리를 끝내고 누워있다가 별안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고 누군가 등을 망치로 때리는 것 같은 통증에 신음을 내질렀다.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했고 왼쪽 다리가 저려 오면서 힘이 풀렸다.

즉시 구급차를 불렀고 동네병원을 거쳐 인근 종합병원에 갔지만 그 병원에선 다음날 아침까지 다리만 신경썼다. 김씨는 죽을 것 같다는 공포를 느꼈다. 가족에게 심장수술에 용한 의사가 있다는 병원으로 옮겨 달라고 졸랐다.

일요일 오전 8시경 병원에 도착했고 4∼5시간 검사 끝에 주치의가 나타났다. 그는 “심장에서 온몸으로 혈액이 빠져나가는 대동맥이 파열됐다. 당장 수술받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리는 피가 통하지 않아 막 썩어들려는 참이었다.

수술은 오후 2시에 시작돼 다음날 오전 2시까지 이뤄졌다. 그는 수술실에서 온몸 마취가 풀리기도 전에 ‘영혼의 귀’로 의사의 목소리를 들었다면서 의사가 ‘자 이제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이제 환자가 살려는 의지만 남았다’고 말했다고 했다.

“대동맥이 찢어져도 모른 채 고통 속에 숨지는 사람이 매년 수 백명이 된대요. 저도 자칫하면 귀신 세상에 갈 뻔 했는데 새 삶을 얻었습니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주치의 한마디

별안간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면 대동맥 파열이라고 여기고 무조건 심장혈관센터가 있는 병원으로 가야 한다. 살아서 병원에 도착하면 97∼98%가 산다.

국내에서 한 해 최소 500여명에게서 생기지만 자신의 병도 모른 채 숨지는 사람이 많다. 환자도 의사도 이 병이 무엇인지, 또 제때 수술받으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몰라 병원을 헤매다 숨지곤 한다. 파열 뒤 수술받지 않으면 70%가 이틀 안에 숨지고 20%는 1주일 안에 숨진다.

수술은 환자에게 시원한 피를 회전시켜 체온을 15∼20도로 떨어뜨려 인체를 ‘냉장 상태’로 만든 뒤 터진 부위를 다르콘이란 섬유소재의 인조혈관으로 교체하는 것. 뇌는 저온에서 30분 정도만 ‘살 수’ 있기 때문에 인조 혈관을 연결한 다음 우선적으로 뇌로 혈액이 가는 목동맥을 우선 개통시킨다.

대동맥 파열은 주로 고혈압 환자에게서 생긴다. 특히 임신부가 출산 직전이나 도중 갑자기 혈압이 올라가면서 동맥이 터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족력이 있는 경우 발병률이 높으므로 가족 중 누군가 대동맥 파열로 숨진 사람이 있다면 늘 조심해야 한다. 환자의 20∼30%는 마르판증후군이라는 유전질환자.

송 명 근(울산대의대 서울중앙병원 흉부외과 교수)

◇마르판 증후군이란?

유전적으로 조직 간 결합력이 약한 병. 환자는 대부분 키가 훤칠하고 팔이 유난히 길다. 배구 농구 선수 중에 많다. 얼굴이 미국의 링컨 전대통령을 닮은 경우가 많아 ‘링컨의 병’으로도 불린다. 눈동자는 중심에서 약간 비켜있다. 요즘 TV 방송에서 몸을 비비틀고 꼬는 ‘묘기’를 가진 사람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조직 간 결합력이 약해 가능하며 상당수가 마르판 증후군 환자. 개인기 자랑만 하지 말고 병원에서 검사받아 대동맥 내벽이 터지기 직전이면 재빨리 내벽 교체 수술을 받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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