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코리아로 가는 길]'인터넷으로 통하는 문' 나라마다 다르다

  • 입력 2000년 10월 24일 18시 33분


‘TV or not TV, That is the question(TV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연극 대사가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를 패러디한 이 말은 홍콩샹하이은행(HSBC)이 TV 홈뱅킹 서비스를 알리기 위해 만든 것.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이 은행은 지난해 9월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TV를 이용한 홈뱅킹 서비스를 시작했다. HSBC가 PC도, 전화도 아닌 TV를 홈뱅킹을 위한 단말기로 선택한 이유는 다름 아닌 ‘고객’ 때문이다.

HSBC의 e비즈니스 담당 수석 매니저인 니콜라스 윈저는 “기존 점포망을 늘리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터넷 뱅킹을 보급하려 했지만 영국의 고객들이 PC를 두려워한다는 게 문제였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나라마다 다양한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채널을 선정하되 채널마다 같은 은행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게 하자는 게 HSBC의 전략”이라고 밝혔다.

HSBC가 제공하는 TV 뱅킹서비스는 ‘하루 24시간 언제든지 원하는 시간에 집에서’라는 모토를 내세우고 있다.각 가정에 은행지점을 냈다는 의미로 ‘소파 은행’이나 ‘안락의자 은행’으로 불린다. 서비스는 잔액조회나 신용카드 거래명세 확인, 대출 할부금 조회 등 아직은 기본적인 것에 한정됐지만 조만간 다양해질 전망이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인터넷으로 통하는 관문(gateway)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게이트웨이는 웹 서핑의 출발점인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물리적인 단말기와 콘텐츠가 함께 결합한 새로운 개념이다.

미국에선 인터넷과 PC의 보급률은 높지만 이동전화의 보급률은 상대적으로 낮다. 일본의 경우는 정반대로 이동전화 보급률이 높고 인터넷이나 PC에는 저항감을 갖고 있다. 이런 사회에선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유럽은 북유럽과 남유럽 사이의 정보화 격차(디지털 디바이드)가 심각하다. 핀란드나 스웨덴 등 북유럽 지역은 인터넷과 이동전화가 널리 보급돼 있고 이용률도 높지만 남유럽은 그렇지 않다.

영국은 미국이나 북유럽에 비하면 컴맹과 넷맹이 많은 편이다. 반면 영국은 전세계적으로 TV 시청시간이 길기 로 소문나 있다. 위성방송인 B스카이B와 지상파방송인 온디지털이 디지털 방송을 실시하고 있으며 영국내에서만 이미 200만 가구가 가입했다. HSBC가 TV를 단말기로 선택한 것은 이같은 점을 감안한 것이다.

영국에서 TV가 인터넷 접속을 위한 게이트웨이로 활용되고 있다면 일본에선 휴대전화와 게임기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도쿄 중심가에 자리잡은 일본 제1위의 무선통신 사업자 NTT도코모의 사무실. i모드 서비스의 콘텐츠 개발을 맡고 있는 야마구치 유시테루(山口善輝)과장은 자신의 휴대전화 화면을 비키니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으로 바꿔 기자에게 보여준다. 기자가 “도대체 i모드 서비스에 일본 중장년 남성들까지 열광하는 이유가 뭔가”라고 질문하자 대답 대신 이처럼 비키니 여성을 보여준 것.

휴대전화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 각종 정보를 다운로드 받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i모드는 세계적으로 가장 히트한 e비즈니스 사례로 꼽힌다. 요즘도 매달 120만명 가량의 사용자가 새로 가입할 정도.

원래 i모드 서비스의 주된 타깃은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의 젊은 여성이었다. 첨단기기에 상대적으로 덜 친숙한 이들에게 휴대전화를 보급하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가 개발됐다. i모드 서비스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업체는 600개가 넘고 인터넷 사이트도 1100여개나 된다. 그 가운데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서비스는 놀랍게도 전화 벨소리 다운로드 서비스다. 그 다음은 단말기 화면배경으로 쓰이는 애니메이션 다운로드 서비스. 작은 것에 집착하고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그들의 문화가 그대로 나타난다.

일본에서만 100만대 이상이 팔려나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 역시 단순한 게임기가 아니다. 워크맨 이후 최대의 성공작으로 꼽히는 플레이스테이션은 소니가 e비즈니스의 게이트웨이를 점령하기 위해 준비한 ‘트로이의 목마’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소니의 게임기사업 책임자인 쿠타라기 겐 사장은 “게임기는 mp3 파일을 듣거나 DVD 영화를 보는 데 PC보다 훨씬 유리하다”면서 “동영상 위주의 광대역(브로드밴드) 인터넷시대에 적합한 단말기”라고 강조했다. 게임기의 주요 타깃층인 어린이들이 자라는 데 맞춰 플레이스테이션을 소니의 표준에 따르는 홈 엔터테인먼트 기기들과 연결하기 위한 일종의 ‘수퍼 셋톱박스’로 이용하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e비즈니스 역시 시장을 읽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본격적인 e비즈니스 시대, 기업은 소비자가 선호하는 매체(인터넷, TV홈쇼핑, 휴대전화, 게임기, 전자수첩 등)와 지불방식(신용카드, 현금, 은행송금, 수표, 전자화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같은 변수는 국가마다, 사회마다 모두 다르다.

한국은 인터넷 전자상거래, m커머스, 양방향 TV 등 모든 대안이 한 데 섞여있는 ‘e비즈니스의 실험장’과 같은 곳이다. 그러나 아직 e비즈니스를 통해 수익을 내는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세대별, 게이트웨이별 시장 차이를 반영한 맞춤형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그 이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런던·도쿄〓홍석민기자·이승규 KAIST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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