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관리업체가 '사전 예방' 차원에서 해당 글을 사전 경고 없이 삭제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게시판 관리 업체가 게시물을 보다 엄격하게 관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법정판결때문. 지난 달 30일 "PC통신 게시판에 올려진 글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이를 삭제하지 않은 PC통신 회사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아직 이 판례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사법부는 이번 판결을 통해 인신공격과 욕설이 난무하는 인터넷 게시판에 충분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글쓴이의 신원 확인이 비교적 쉬운 PC 통신에서 발생했지만 익명으로 글을 남길 수 있는 인터넷 게시판 게시물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는 이미 지난 해 10월에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들은 필요한 경우 인터넷상에 명예훼손 과 관련한 글을 올리는 사용자들의 신원을 공개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로 게시판 관리에 비상이 걸린 PC통신 업체들은 '가뜩이나 경기가 안좋은 마당에 새로운 부담까지 지게 됐다'며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게시판 자율 정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명예훼손 게시물 삭제 안하면 배상해야"=지난 달 30일 한국통신하이텔은 네티즌 함모씨에게 100만원의 손해 배상을 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게시물이 올려진 것을 알고도 5개월이 넘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정신적 피해를 줬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전자게시판을 설치, 운영하는 전기통신사업자는 사용자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린 것을 알거나 알 수 있었다면 삭제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 당사자인 하이텔은 의외의 결과에 당황하는 모습이다. 하이텔은 이미 1심 재판에서 배상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2심 재판에서도 승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별다른 대책을 마련 하지 못했다.
하이텔은 이번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갈 계획이다. 하지만 대법원에 상소할 계획 이외에 뾰족한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혼란스런 PC 통신업계=다른 PC통신 업체들도 이번 법원의 판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기는 마찬가지.
사업자 입장에서는 명예 훼손 게시물을 삭제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을 제대로 따르려면 명예훼손 혐의가 있는 게시물을 일일이 감시해 삭제해야 한다.
대부분 PC통신 사업자는 이용약관에 '타인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게시물을 올렸을 경우 해당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고 있어 삭제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현재 10여명 내외의 게시물 모니터 인력이 하루에도 수천건 이상 올라오는 게시물을 일일이 모니터해 명예 훼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삭제 등의 조치를 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명예 훼손 등 불량 게시물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도 문제다. 넷츠고 게시판 관리자는 "이 판결로 게시판 관리팀은 온통 비상 상태에 들어갔지만 무슨 기준으로 불량 게시물을 선정할 지 막막해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니터 인력을 확충해 엄격한 게시판 관리에 나선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엄격한 게시판 관리는 곧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네티즌의 반발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하이텔 관계자는 "이 판결이 나오기 전에도 게시물 삭제에 반발해 삭제 근거를 대라는 네티즌들이 많았다" 며 "사업자에 의한 검열이라는 항의가 나올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게시판 정화에 도움될 것"=PC 통신 사업자들의 걱정에도 불구, 이번 판결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익명성을 무기로 온갖 욕설, 인신공격, 근거 없는 비방이 난무했던 게시판이 정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판결로 무책임한 글을 쓴 사람은 물론 게시판 운영관리자도 게시물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는 것이다.
넷츠고의 정지한씨 (ID: topflite)는 "무책임한 게시판 글을 처음엔 웃어넘겼지만 이제는 짜증난다" 며 "그러한 글들을 보면 삭제를 요구하거나 항의 메일을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강우리씨(ID:genius2001)도 "게시판에 건전한 비판과 충고는 사라지고 비난과 욕설만 난무하고 있다"며 "정부의 개입이 있기전에 네티즌 스스로 깨끗한 인터넷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종우<동아닷컴 기자>he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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