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급하는 제품은 한마디로 ‘구식’뿐이다. 구색을 맞추느라 서너가지 상품을 갖추고 있지만 ‘로모(LOMO)’라는 이름의 손바닥만한 러시아산 카메라 한 가지가 전체 매출의 90%이상을 차지한다. 한 대에 26만4000원하는 로모는 말이 좋아 카메라지 첨단 시대의 감각으로 보자면 촌스럽다. 그런데도 8월 이후 로모는 매달 500대 이상 팔렸다. 10월 들어서도 주문이 밀려 제때에 배송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이런 ‘기적’이 일어나게 했을까.
“카메라를 파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팔기 때문입니다.”
허 사장은 제품을 팔기보다는 그 것에 담겨 있는 문화를 보급하려 노력한다고 대답했다. 쇼핑몰을 화려하게 꾸미기보다는 사용자들이 새로운 문화를 공유하도록 이끌었다. 국내 ‘로모 소사이어티’는 현재 4000여명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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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모는 구소련 시절 정보기관인 KGB가 첩보용으로 개발한 35㎜ 콤팩트 카메라. 야간 및 근접촬영 용도로 만든 특수렌즈를 사용해 월등한 해상도와 색감을 낸다. 플래시 없이도 밤에 미세한 움직임을 잡아낼 수 있어 현란한 야경을 찍는데는 제격.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생산이 중지됐으나 92년 오스트리아의 대학생 피글이 체코 프라하의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해 다시 상품화의 길을 걷게 됐다.
로모는 생산공장인 레닌그라드광학기계제작조합(Leningradskoje Optiko Mechanitscheskoje Objedinienie)에서 따온 이름이다. 현재 로모는 이곳에서 한 달에 2000개 정도 생산된다. 약 450여개의 부품을 숙련공 한 사람이 하루에 한 개씩 조립하는 것. 이 때문에 로모는 인터넷을 통한 주문판매만 가능하다.
허 사장이 로모를 처음 접한 것은 오스트리아 빈에 로모인터내셔널이 발족한 뒤 세계 각국으로 로모 마니아가 확산되던 99년 8월. 일본인 사용자가 홈페이지에서 소개한 이 카메라에 호기심을 느껴 본사에 e메일을 보내 샀다. 이후 로모에 빠져들면서 손수 찍은 사진을 전시하기 위해 직접 만든 홈페이지가 인터넷 쇼핑몰로 발전했다. 빈의 본사에 e메일을 보내 로모를 국내에서 팔 것을 제의하면서 그해 12월 로모코리아가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허 사장의 공식 직함은 ‘로모 한국 대사(ambassador)’. 본사격인 로모 인터내셔널은 각국에 지사를 두는 대신 ‘대사(embassy)’를 두는 독특한 경영시스템을 쓰고 있는 일종의 ‘예술 벤처’. 로모 대사는 전세계 50개국에 퍼져 있으며 총 회원수는 6만여명에 이른다. 회원 중에는 뮤지션인 데이비드 보위, 종교지도자 달라이 라마, 정치 지도자인 야세르 아라파트와 피델 카스트로 등 유명인사도 다수다.
허 사장은 로모코리아(www.lomo.co.kr)와 함께 창업 초기부터 커뮤니티 사이트인 로모스타일닷컴(www.lomostyle.com)을 운영중이다.
허 사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맞아 두 나라의 로모그래퍼들이 함께 만드는 ‘로모월’(로모 사진으로 만든 대형 벽화) 제작을 준비중이다. 로모코리아 사이트내에 회원들을 위한 무료 개인 갤러리를 만들어 작품 전시와 교류를 지원할 계획이다.
<김태한기자>free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