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진료실 옆 소아약국 주위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대기의자에 앉아 있던 세살 정도의 여자 아이가 물약병을 통째로 입에 물고 약을 마시고 있었던 것. 아이의 엄마는 분홍색 항생제 물약을 과일 주스 정도로 생각했는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복용법을 지키지 않으면 자칫 ‘독(毒)’이 될 수도 있는 약을….
많은 사람이 크고 작은 질환에 수많은 약을 먹는다. 그러나 자신이 먹는 약을 언제, 어떻게 복용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제로 병원 약국에서 근무하다보면 약의 복용법을 무시해 엉뚱한 부작용을 경험하거나 예기치 못한 위험에 빠지는 환자들을 볼 수 있다. 비단 물약의 양을 지키지 않고 어린 딸에게 먹이는 보호자뿐만이 아니다. 항문에 넣어야 할 좌약을 먹은 할머니, ‘식후 30분’ 원칙을 지킨다는 명분에 끼니를 거르면 혈압약을 먹지 않는 고혈압 환자, 한달치 당뇨병 약을 한 입에 털어놓고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
모든 약물은 약 자체의 특성 및 약효는 물론 몸속에서 흡수가 가장 잘 될 수 있는 시간에 맞춰 복용법이 정해진다.
약봉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후 30분’이라는 복용시간은 몸의 장(腸)운동을 고려한 것이다. 약의 대부분은 소장에서 흡수된다. 식후 30분 정도가 지나면 위속의 음식물이 소장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약의 흡수도 신속해지고 위장점막도 보호할 수 있다.
또 속쓰림 등 위장 장애를 많이 일으키는 소염진통제는 식사 직후에 먹는 것이 좋다. 반면 결핵약과 당뇨약, 식욕촉진제, 위장 운동 촉진제 등은 식전에 먹는 것이 효과적이다. 결핵약은 음식물 때문에 몸에 흡수되는 것이 방해될 수 있다. 당뇨약이나 식욕 및 위장 운동 촉진제 등은 약물의 혈중농도가 올라갔을 때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
아무리 좋은 치료제도 복용법을 지키지 않으면 처음 기대했던 치료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또 약을 먹기 전에 함께 먹어서는 안 될 다른 약물이나 음식에 대해서도 알아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유윤경(가톨릭대 성모병원 약품정보실 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