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 분국의 문을 박차며 동료가 다급히 외친다. 졸린 눈을 비비며 급히 병동으로 뛰어내려갔다. 즉시 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과 기도확보 등의 응급처치를 했다. 다행히 환자는 40여분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127에도 어레스트 발생.”
다시 화급한 외침에 4명의 전공의는 병동을 가로질러 또 다른 환자에게 CPR와 응급처치를 했다. 마지막이겠거니 했는데 또 “73에 어레스트”라는 외침이 들려온다.
오늘도 새벽잠을 기대했던 것은 ‘수포’로 돌아갔다. 나는 또 뛰었다. 하룻밤의 폭풍같은 상황이 지나고 병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보니 새벽 5시가 훌쩍 넘었다.
전공의 생활을 시작한 지도 석 달이 조금 넘었다. 지금은 암병동에서 40여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 20개의 메시지가 저장되는 호출기를 하루에도 3번 이상 지울 만큼 항상 시간에 쫓겨 산다. TV 속의 멋쟁이 의사 모습은 학생 실습 때 지켜봤던 선배들의 실상을 통해 깨어진 지 오래다. 투약 지시와 처치, 하루 세 차례의 회진 준비, 의국회의, 환자 치료사례 발표 준비. 승강기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도 조바심이 나 계단으로 뛰어오르는 나를 발견한다.
담당 환자 중에는 나의 치료 지시와 병에 대한 설명을 못미더워 하며 교수를 직접 찾는 이도 있다.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좀더 ‘힘있는’ 의사에게 의존하고 싶은 환자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갈수록 의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어 가끔은 왜 이런 일을 자초했는지 회의가 들 때도 있다.
환자는 완전무결한 ‘성자(聖者)’로서의 의사를 원한다. 의약분업 사태 때 많은 사람이 ‘비뚤어진 성자’의 모습을 꼬집기도 했다. 국민의 기대수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같은 과도한 도덕성의 요구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의사도 성자를 떠나 한 사람의 생활인이고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자에게 믿음을 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 환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잠든 늦은 밤에도 병상을 다시 찾는다. 병세가 크든 작든, 환자가 누구이든지 상관없이 작은 약속이라도 꼭 지킬 줄 아는 젊은 의사로 기억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동형(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내과 전공의 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