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뇌에 뇌중풍이 생긴 것이다. 의사가 K씨의 팔을 들어보니 힘없이 툭 떨어질 정도로 마비가 심했다. 그런데 마비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K씨는 자신의 팔다리가 마비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며, 게다가 여기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었다.
의사가 “환자분 팔이 어떻게 되었어요”라고 물으니 그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요”라며 태평하게 웃었다. 마비된 팔을 들어 보이며 “이게 왜 안 움직이죠”라고 하니 “아 어제 어깨가 조금 삐어서 그래요”라고 둘러대기도 했다.
우리는 감각기관을 통해 세상의 온갖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러한 감각을 조합, 정리함으로써 그 사물이 무엇인지 인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감각기관은 정상이지만 의식이 없어지거나, 치매가 된 것은 아닌데도 뇌의 이상으로 감각 정보가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상을 ‘실인증(失認症)’이라고 한다. 이 단어는 1891년 정신분석학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처음 사용했다.
이전에 이미 헐링 잭슨은 오른쪽 뇌에 이상이 있는 환자가 물체를 분명 보기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을 기술했다.
우리의 뇌에서 왼쪽 뇌는 언어적, 분석적 기능을 담당한다. 반대로 오른쪽 뇌는 주변 상황에 대한 전체적인 인식 기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실인증 증세는 대체로 오른쪽 뇌가 손상된 환자에게서 발견된다. K씨 역시 오른쪽 뇌 손상에 의해 자신의 팔다리가 마비된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드물지만 자신이 맹인이 되었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는 ‘시각 실인증’ 환자도 있다. 우리의 눈을 통해 들어오는 시각 정보는 뇌의 뒷부분, 즉 시각 중추인 후두엽(뒤통수엽)에서 파악된다.
이 후두엽이 좌우측 모두 손상되면 우리는 맹인이 된다. 그런데도 시각 실인증 환자는 자신이 세상을 보고 있는 줄 안다. 환자는 걸어 다니다가 물체에 부딪히기도 하는데 이처럼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조명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1899년 안톤이란 학자가 처음 기술해 ‘안톤 증후군’이라 불리고 있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지만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정상적인 뇌가 필요한 것이다.
김종성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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