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교수의 뇌의 신비]최후순간까지 뇌는 근무중

  • 입력 2002년 12월 15일 16시 35분


얼마 전 목조르기 놀이를 하던 소년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목을 조르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이런 놀이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죽음 직전에 의외로 기쁨이 느껴지는 것을 경험했다는 사람이 많다. 죽음 직전에 찾아오는 이러한 느낌에 대해 처음 기술한 사람은 하임이란 학자인데 그는 1892년 알프스 산맥에서 조난 당했다가 죽음 일보 직전에 구출된 환자 30명을 조사했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웠을 때 기쁘고, 경건하며, 자신이 이 세상과 아주 잘 조화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서부개척 시대에 목을 매는 사형 방법은 죽을 당시 환희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의 총을 쏘는 행위보다 오히려 좀 더 자비로운 방법일 수도 있다. 아마도 야수에게 목을 물려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초식동물들도 마지막 짧은 순간에는 환희를 느낄 것이다.

죽음 직전에 이처럼 환희가 찾아오는 원리는 무엇일까?

우선 뇌 변연계(가장자리계)의 기쁨 호르몬인 엔도르핀이 분비되는 시스템이 활발해진다는 주장이 있다.

개의 심장을 갑자기 정지시키면 개의 척수액이나 혈청에서 엔도르핀이 증가된다는 보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는 그렇지만 개를 마취한 뒤 이런 실험을 하면 엔도르핀이 증가하지 않는다.

둘째로 ‘NMDA 수용체 가설’이 있다. 신경세포에서 신호를 전달하는데 핵심역할을 하는 NMDA 수용체를 차단하는 여러 종류의 물질을 투여하면 환각, 이상한 느낌 등 죽음 직전에 사람들이 경험했다는 것과 비슷한 증세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뇌세포는 NMDA 수용체를 통해 글루타민 신경전달물질이 과도하게 유입될 때 주로 일어난다.

그렇다면 우리의 몸이 위기 상태에 있을 때 뇌세포를 보호하기 위해 NMDA 수용체를 차단시키는 물질들 역시 뇌에서 증가할 것이고 이것이 죽음 직전의 기쁨을 유발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죽음 직전의 환희는 신이 불쌍한 생명에게 내려준 최후의 자비일까?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고통이란 본질적으로 개체가 그 고통의 원인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뇌의 전략이다. 하지만 도무지 피할 수 없는 막다른 상황 속에 있다면 우리가 더 이상 고통 속에 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합목적적으로 일하고 있는 것 같다.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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