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되자 승민이는 이불에 결국 대형 피자를 만들어 놓았다. 밥, 호박, 감자, 달걀, 김, 콩 등이 어우러진 토사물이었다. 소화가 제대로 안 돼 뭘 먹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 아내는 그제야 태도를 바꾸며 승민이를 안아 주었다. “승민아, 너 정말 아팠구나….” 아내는 저녁 먹을 때 승민이를 혼내서 급체를 한 모양이라며 자책했다.
승민이는 다섯 살인데도 혼자 밥을 다 먹질 못한다. 반은 제가 떠먹지만 나머지는 먹여 줘야 한다.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와 아내가 쫓아다니며 밥을 먹이는 통에 식습관이 잘못 든 것이다. 아내는 지원이 이유식 먹이랴, 승민이 밥 먹이랴 힘들어하더니 그날따라 화가 폭발했는지 승민이를 아기용 식탁의자에 가두고 ‘밥 다 먹기 전엔 못 내려온다’고 엄포를 놓았다. 놀란 승민이는 억지로 쑤셔 넣듯 밥을 먹었다. 그러니 탈이 날 수 밖에….
새벽 내내 우리는 승민이 배를 어루만져 주면서 아이들 식습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껏 아내는 승민이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는 욕심에 쫓아다니며 밥을 먹이는 수고를 해 왔다. 그렇다고 승민이가 더 잘 자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밥은 놀면서, 쉬엄쉬엄 먹는 것, 내가 먹기 싫으면 엄마가 먹여 주는 것이라는 인식만 심어 주었다.
아이가 엄마 성에 안 차게 먹어서 속상할 수도 있겠지만 억지로 밥을 먹게 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잘 먹었을 때 칭찬을 아끼지 않는 방법을 쓰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배고프면 먹게 돼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면 억지로 밥을 먹여야 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아이들과의 산책시간을 저녁 식후에서 식전으로 옮겨 허기를 느끼도록 만드는 것도 좋다. 식사시간을 30분 정도로 잡고 그 시간이 지나면 과감하게 상을 치우고, 아이가 먹지 않은 밥에 대해 미련을 버리자.
둘째 지원이만큼은 올바른 식습관을 들이기 위해 최근에 숟가락을 손에 쥐여 주고, 혼자 숟가락 쓰는 방법을 익히도록(보통 생후 8∼12개월 시작)하고 있다. 비록 옷과 방을 버리고, 밥을 손으로 집어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계속 노력 중이다. 이러다 보면 두 돌 무렵에는 혼자서 밥을 잘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과의 식사시간이 즐거워지려면 엄마가 먼저 ‘많이’, ‘빨리’ 먹이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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