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오른 그는 차에 탑재된 컴퓨터로 회사의 컴퓨터를 불러 오늘의 방문 일정과 고객 명단을 확인한다. 거리에는 한 시각장애인이 보도블록에 깔린 칩의 안내에 따라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박씨는 집 근처 쇼핑센터에 들렀다. 계산대에서 줄을 서는 것은 옛 일. 계산대 앞을 걸어나오면 상품에 붙은 작은 칩이 그의 손목시계 휴대전화와 연결돼 자동으로 결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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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쿼터스 혁명이 세상을 휩쓸고 있는 2008년 한 세일즈맨의 하루다.
지난달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전(ICES)에서도 빌 게이츠 MS회장을 비롯해 소니, 델컴퓨터, 인텔 회장은 기조 연설을 통해 홈 네트워크와 모바일 네트워크 등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기기로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공유하는 ‘유비쿼터스’ 시대가 왔다고 선언했다.
빌 게이츠 회장이 제시한 컴퓨팅 기능을 가진 단추나 탁상시계 열쇠고리 같은 ‘스마트 오브젝트’, 미국과 유럽에서 추진하고 있는 ‘입는 컴퓨터’ ‘사라지는 컴퓨팅’도 유비쿼터스의 일종이다.
지난해 12월 통신사업자 최고경영자(CEO)포럼에서 전자통신연구원 이성국 기술경영연구소장은 유비쿼터스 혁명에 발맞춰 “정부는 2007년까지 전국에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u-코리아’ 정책을 추진하자”고 제안해 u코리아포럼이 출범했다.
학계에서도 ‘유비쿼터스 컴퓨팅 학회’가 같은 달 창립했다. 이미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조금씩 선을 보이고 있다. 홈 오토메이션을 도입한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의 경우 거주자들이 휴대전화나 휴대용 개인정보단말기(PDA)로 집밖에서도 에어컨, 세탁기와 가스밸브를 제어할 수 있다. 모바일 컴퓨팅이 가능한 네스팟존 8000개를 캠퍼스와 공공장소에 이미 설치한 KT는 ‘스마트 라이프’를 구호로 내걸고 10, 20, 30대의 구미에 맞는 유비쿼터스형 스마트 단말기를 개발하고 있다.
㈜유비드림은 박물관의 모든 전시물에 칩을 부착해 관람객의 PDA와 칩이 서로 교신하면서 입체적인 안내를 받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회사 최운식 대표는 최근 ‘유비쿼터스 컴퓨팅 혁명’이란 책을 번역했다.
정보통신부 김창곤 정보화기획실장은 “유비쿼터스 컴퓨팅이 되려면 우선 도로 다리 화분 냉장고 시계 등 무생물에 컴퓨터를 심고 주소를 부여해 유무선 네트워크로 연결해야 한다”며 “현재의 32비트 인터넷 주소체계(IPv4)보다 훨씬 많은 주소를 부여할 수 있는 128비트 주소체계(IPv6)가 올해 도입될 예정이어서 유비쿼터스 시대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혁명은 컴퓨터 속에 사무실과 쇼핑몰 도서관을 집어넣었다. 유비퀴터스 혁명은 반대로 물리공간 속에 컴퓨터를 집어넣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자공간과 물리공간이 융합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1000원대의 칩이 나와야 하고, 유무선망의 진화와 융합, 칩과 센서의 소형화, 음성인식 기술의 발전도 뒤따라야 한다.
LG전자 홈 네트워킹 책임자인 박현 상무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홈 네트워크 분야에서 가장 먼저 시작돼 5년 후 보편화될 것”이라며 “정부가 아파트에 홈 네트워크 인증제도를 도입해 가정과 외부를 연결할 홈 게이트웨이를 설치하도록 권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비쿼터스 컴퓨팅학회 신보철 회장(동방미디어 대표)은 “비록 정보혁명은 서구보다 늦었지만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북아시아는 세계의 가전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만큼 유비쿼터스 혁명의 선두에 설 수 있는 높은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비쿼터스(Ubiquitous)=라틴어로 ‘어디에나 있는’이란 뜻. ‘유비쿼터스 컴퓨팅’이란 개념은 제록스 팔로 알토 연구소의 마크 와이저 박사가 1988년 처음 만들어냈다. 그는 집에는 수백개의 컴퓨터가 숨어있고, 이들이 케이블과 무선 네트워크로 연결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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