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의 손목컴퓨터는 나노기술이 가져온 혁신적인 상품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김씨가 들고 다니는 엄지손가락 크기의 플래시 메모리카드(40기가 바이트 용량)는 요즘 CD 700장 분량의 음악, 40편의 DVD 영화를 담는다. 김씨는 호텔방 컴퓨터의 USB포트에 자신의 카드를 끼워 음악과 영화를 즐긴다.
나노시대는 올해가 원년이 될 전망이다. 세계에서 메모리 기술이 가장 앞선 삼성전자가 올 여름 나노기술로 만든 4기가 바이트 용량의 플래시 메모리를 처음 선보인다. 여기에는 음악 CD 70장을 담을 수 있다. 이 메모리에 90nm 선폭 기술이 세계 최초로 적용됐다. 흔히 나노기술은 100nm 미만의 선폭을 적용한 칩기술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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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모리를 개발한 삼성전자 차세대연구팀 최정혁 수석연구원. 그는 미국 출장이 잦지만 지난해부터 컴퓨터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엄지손가락 만한 플래시 메모리에 자신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담긴 윈도우즈2000 등 모든 프로그램과 자료를 넣을 수 있기 때문. USB포트에 메모리만 끼우면 미국의 어떤 컴퓨터도 자신의 컴퓨터와 똑같이 된다. 그러니 무거운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반도체의 집적도와 성능은 18개월마다 2배씩 향상된다. 이것이 ‘무어의 법칙’. 이를 적용하면 앞으로 5년 뒤 반도체칩은 10배 많은 정보를 담고 프로세서의 성능도 10배 향상된다. 최 수석은 “이런 발전 속도로 볼 때 5년 뒤에는 핸드폰이 전자수첩, 캠코더로 쓰이고 PC가 통째로 핸드폰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5년 뒤에는 전하로 정보를 기억하는 DRAM, 플래시메모리와는 달리 자기로 정보를 기억하는 MRAM이 돌풍을 일으킬 전망이다. 삼성종합기술원 전략기획팀 이은홍 박사는 “DRAM은 플래시메모리보다 정보를 읽는 속도가 수백배 빠른데다 전원을 꺼도 정보가 날아가지 않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MRAM 컴퓨터는 윈도우즈가 부팅되기를 지루하게 기다릴 필요가 없고 엄청난 정보처리속도를 발휘하게 된다.
2010년께에는 ‘단전자소자’나 ‘탄소나노튜브소자’가 등장해 진짜 ‘나노전자소자’시대를 열게 된다. 이때쯤 되면 선폭이 현재 90nm에서 5∼10nm수준까지 떨어진다. 단전자소자 회로를 개발한 충북대 최중범 교수는 “현재 PC의 128메가DRAM에서는 하나의 트랜지스터에서 전자가 1만개 움직이지만 단전자소자에서는 단 한 개의 전자가 이동해 정보를 처리하므로 전기소모량이 1만분의 1로 줄어든다”고 말한다. 1년 동안 배터리를 충전하지 않아도 되므로 모바일 컴퓨팅에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과기부 테라급나노소자사업단 이조원 단장은 “일본의 반도체산업이 한국 때문에 추락했듯이 한국도 지금 점프를 못하면 중국의 추격에 밀려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며 “혁신적인 개념의 나노전자소자를 만드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1나노미터는…▼
나노는 10억 분의 1을 의미한다. 1nm는 원자가 불과 서너개 늘어선 길이. 즉 머리카락 10만 분의 1 굵기에 해당하는 선폭기술로 칩을 만드는 것이다. 90년대까지 반도체는 마이크로 즉 100만 분의 1m 수준의 선폭을 가졌다. 집채만한 슈퍼컴퓨터를 엄지손가락 만한 칩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나노기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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