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뉴욕타임스]거짓말 뒤엔 과거가 숨어있다

  • 입력 2003년 8월 24일 17시 41분


‘대충 얼버무려 넘기기, 애매모호한 말, 악의 없는 거짓말.’

당신이 어떻게 부르든 결국 이런 것들은 거짓말의 일종이다. 흔히 거짓말은 나쁘고 잘못된 것으로 본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이에 상응하는 체벌을 받아왔다. 단테는 그의 작품 신곡의 ‘지옥’편에서 거짓말쟁이는 폭력적 범죄자보다 못한 그 아래의 도덕적 단계로 분류했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 중 거짓말만큼 모순된 것도 없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거짓말은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부모들은 예의상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

거짓말은 동물과 구별 짓는 인간의 영역이다. 효과적으로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지능과 상대방을 속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속이는 능력은 4세 이하에서 대부분 얻게 된다. 한 예로 네 살짜리 아이에게 연필을 가득 채운 사탕통을 보여주면 이 아이는 이 통에 사탕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아이는 이런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자폐증과 같은 뇌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는 남을 속이는 일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자폐아들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일은 스스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짓말엔 그 뒤에 숨겨진 심리학적 또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의사인 리처드 프리드먼 박사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은 한 여자는 가족 모르게 부엌에 음식을 숨겨 놓는 습관을 가진 환자다. 그녀는 가족이 음식을 찾으면 수시로 “모른다”며 거짓말을 했다고 프리드먼 박사에게 털어놓았다.

프리드먼 박사는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 밑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란 환경 때문에 생긴 습관”이라며 “이것을 알게 된 그녀는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프리드먼 박사의 한 남자 환자는 거짓말을 하게 되면 스스로 기분이 좋아진다고 털어놓았다. 이 환자는 성공한 기업인으로 그의 업적을 과장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시험 성적을 부풀렸고, 실제로 운동경기에서 2등이나 3등을 했는데도 우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기중심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처럼 형편없는 사기꾼으로 낙인찍힐까봐 끊임없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거짓말은 약한 자존심을 지탱해 주는 수단이었다.

남의 주의를 끄는 거짓말쟁이 중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양심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이들의 거짓말은 겉으로 봤을 때는 매력적일 수 있으나 대부분 진실한 감정이 부족하며 별 어려움 없이 거짓말, 도둑질, 폭력을 일삼는다. 이들은 남의 것을 손에 넣거나 순간적인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자주 거짓말을 한다.

반사회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틀린 감정적, 생물학적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즉 이들은 슬픔이나 공포에 대한 얼굴표정의 반응이 적고 감정 표현도 대체적으로 둔감하다는 것이다.

흔히 거짓말을 하게 되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땀이 나거나 하는 생리적인 현상이 생긴다. 그러나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는 이런 생리적 현상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거짓말탐지기’가 소용이 없다.

최근 의학자들은 뇌 영상촬영을 통해 거짓말을 탐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대니얼 랭글리벤 박사는 18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거짓말을 할 때 뇌에서 어떠한 변화가 생기는지 알기 위해 ‘자기공명영상(MRI)촬영’을 이용한 실험을 했다.

실험 결과 랭글리벤 박사는 지원자들이 거짓말할 때 뇌의 앞쪽 2개의 부위에서 활동이 훨씬 증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뇌는 진실을 말할 때보다 거짓말할 때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며 “더구나 남을 속일 때는 진실한 반응을 적극적으로 막으려는 뇌의 활동이 더욱 증가한다”고 말했다.

힘들지만 진실을 말하는 것이 거짓말하는 것보다 쉽다는 옛말도 있다.

비록 뇌 영상촬영이 거짓말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아직은 어느 누구도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읽을 수 없다. 지금까지는 거짓말을 막는 기술은 없다.

(http://www.nytimes.com/2003/08/05/health/psychology/05BEHA.html)

정리=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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