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바이러스]<6>한국서 못느낀 ‘자유’ 美-日엔 있었다

  • 입력 2009년 9월 28일 03시 04분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한국과 미국에서의 장애인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것이다. 그 다름은 정책이나 시설이 아니라 사람들의 반응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흉터를 지니고 살아가다 보니 우리나라와 외국의 차이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9년 전 화상을 입고 7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온 뒤 일상에서의 어려움은 비단 화상의 고통만이 아니었다. 집밖을 나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가는 길엔 정 많은 아주머니들의 ‘쯧쯧쯧’ 소리가 늘 배경음악으로 깔렸고, 나를 한 번 보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없었다. 깜짝 놀라는 사람들도 있었고, 마치 내가 귀도 안 들린다고 생각하는지 바로 내 옆에서 나에 관한 호기심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심지어 한 번 지나간 사람이 돌아와서 아닌 척하며 다시 보고 가곤 했다. 가게에라도 들어가면 모든 사람이 하던 일을 멈추고 희귀한 동물이라도 온 듯 쳐다보았다. 어디로 피할 데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를 둘러싼 사람들로부터 쏟아지는 조용한 시선은 ‘불편함’ 그 이상이었다. 나는 건강한 사람들만 사는 지구별에 떨어진 외계인이 된 듯했다. 또한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는 필요 이상의 호기심이 가득한 질문으로 ‘너는 나와 다르구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다 치료를 받으러 일본에 처음 갔을 때, 나는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겨우 두 시간 비행기를 타고 갔을 뿐인데, 그곳은 신세계였다. 어느 누구도 나를 두 번 쳐다보지 않았다. 속으로 궁금해 미칠지언정 나에게 다가와 묻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1년 만에 자연스레 모자를 벗고 진정한 ‘자유’를 만끽했던 기억이 있다. 옷 입는 스타일이 조금 다르기도 하지만 일본인과 한국인을 구별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나를 보고 그냥 지나치느냐 아니냐의 차이.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주의가 강조된 문화이기도 하고 워낙 많은 세계인들이 와서 사는 땅이기 때문에 나 같은 외모의 사람은 그저 많고 많은 인종 중의 하나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다양한 피부색 중에 나는 불그스름한 피부색을 지닌 핑크 인종 정도? 도움을 요청하면 친절히 도와주지만, 그전까지 나를 전혀 다르게 대하지 않는다. 나조차도 내가 흉터가 있다는 것을 잊고 살 만큼.

요즈음 TV를 보다 보면 사람들이 흔히 혼용하는 단어로 ‘다르다’와 ‘틀리다’가 자주 들린다. “내 옷과 네 옷 색깔은 틀려” “그와 나는 생각이 틀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말이다. ‘옳지 않다’라는 의미의 ‘틀리다’를 ‘같지 않다’는 의미로 잘못 사용하고 있다. 국어책에서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배웠다.

작은 차이지만 우리의 말 속에 녹아든 틀림과 다름의 혼용이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나와 다른 외모의 사람들을 눈빛으로 나와 ‘틀리다’라고 구별해 내고 있지는 않은지….

미국이 장애인들의 천국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나와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을 한 번 더 쳐다보지 않는다면 장애인들은 다른 평범한 사람이 모두 누리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나와 모습은 다르지만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순간의 호기심은 참을 수 있지 않을까. 장애인들의 천국은 그런 작은 배려가 만드는 것이다.

<이지선 미국 뉴욕에서, 푸르메재단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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