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에 벤젠 등 1군 발암물질 7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2일 03시 00분


식약처, 성분 분석결과 첫 공개… 함량공개 법안은 국회에 묶여

담배 한 개비를 피울 때마다 25t 화물차가 200km 주행하며 내뿜는 만큼의 벤젠(1군 발암물질)이 입안으로 들어온다는 정부의 분석 결과가 처음으로 나왔다. 담배 한 개비에서 검출된 유해성분은 1군 발암물질 7종을 포함해 총 32종이나 됐지만, 제조사에 성분 함량 공개를 요구하는 법안은 국회에 아직 계류 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5∼2016년 국내에서 제조사별로 가장 많이 팔린 담배 5종(디스 플러스, 에쎄 프라임, 던힐, 메비우스 스카이블루, 팔리아먼트 아쿠아5)을 800갑씩 수거해 연기 성분을 조사한 결과를 11일 발표했다. 정부가 2014년 담배 유해성분 분석법을 개발한 후 이를 활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분석은 담배가 다 타들어 갈 때까지 △담배 끄트머리를 1cm 정도 문 채 분당 1회(35mL) 연기를 들이마셨을 때(ISO법)와 △필터의 중간 부분까지 문 채 분당 2회(각 55mL) 들이마셨을 때(HC법)를 기준으로 각각 진행됐다. 둘 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이다. 담배를 입에 물고 직접 들이마시는 들숨의 양만 측정하기 때문에 필터를 거치지 않고 담배 끝에서 나오는 ‘부류연’(간접흡연)은 포함되지 않았다.

 
▼ 식약처 성분 분석결과… 담배 1개비 속 벤젠, 트럭이 내뿜는 양의 212배 ▼

고농도 흡입 시 혼수상태나 백혈병을 유발할 수 있는 벤젠은 HC법 기준 개비당 36.8∼63.5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이 검출됐다. 이는 국립환경과학원이 2014년 평균 시속 46km로 달리는 25t 화물차가 km당 뿜어내는 벤젠을 측정한 값(0.3μg)의 최대 212배다. 2011년 석유화학공단인 울산산단에서 대기 중 벤젠의 양을 측정했을 땐 m³당 최대 47.6μg이 검출됐다. 담배를 통한 벤젠 흡입량이 자동차 배기가스는 물론이고 화학공장 매연에 뒤지지 않는 셈이다.

또 다른 1군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는 25.5∼54.2μg, 2군 발암 가능물질 아세트알데히드는 594.9∼864.7μg, 스티렌은 5.3∼7.8μg 검출됐다. 각각 25t 화물차의 km당 배출량보다 최대 270배, 738배, 104배 많다. 특히 포름알데히드는 기관지염, 현기증, 질식을 일으킬 수 있어 환경부의 ‘실내공기질 유지 기준’에 따라 PC방, 지하철, 실내주차장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m³당 농도를 100μg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좁은 공간에서 담배를 여러 대 피우면 농도가 순식간에 법적 기준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밖에 발암물질로 분류되진 않았지만 시안화수소(일명 청산가스·47∼85.3μg), 산화질소(254.4∼471.4μg), 암모니아(20.2∼24.6μg) 등도 검출됐다. 국산 담배의 유해성분은 2015년 영국 BAT가 공개한 자사 담배의 검출량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벤젠 등 일부는 46.6∼77.4% 수준이었다. 식약처는 이 같은 유해성분이 실제로 인체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는 흡연 행태 및 빈도와 대조해 연말께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발표엔 시판 중인 전자담배 35종을 수거해 분석한 결과도 포함됐다. 전자담배는 분석법이 비교적 최근에 개발돼 총 7종의 유해성분만을 조사했는데, 포름알데히드 0∼4.2μg, 아세트알데히드 0∼2.4μg 등으로 일반 담배보다는 검출량이 적었다. 다만 분석을 맡은 백선영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첨단분석과장은 해당 성분들이 액상 상태일 때보다 연기로 기화했을 때 최고 19배 높게 검출된 점, 전자담배 사용자 대다수가 일반 담배도 함께 피운다는 점을 들어 “전자담배가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식약처의 연구 결과는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에서 주요 증거로 쓰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연구 결과가 제조사에 유해성분 전면 공개를 강제하는 입법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현재 국내에선 제조사가 담뱃갑에 함량을 표기해야 하는 유해성분은 니코틴과 타르뿐이다. 담배 원료와 유해성분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관련법 개정안은 19대 국회에 제출됐다가 폐기됐고, 지난해 7월과 10월 다시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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