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이진형 교수가 만든 뇌회로도는 불치병인 파킨슨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활용할 길을 연 획기적인 성과로, 기존의 치료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파킨슨병은 알츠하이머성 치매, 루게릭병 등과 함께 인류가 해결해야 할 대표적인 난치성 뇌질환으로 꼽힌다.
이 교수는 1일 동아일보에 “뇌를 전기회로로 생각하고 접근하면 기존 의학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 가능하다”면서 “전기공학도로서 그 회로도를 만들어 전기회로를 고치듯 고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한 이 교수는 현재 스탠퍼드대 의대와 공대에서 뇌를 연구하는 뇌과학자이다.
○ 치매 등 난치성 뇌질환 치료 기여
이 교수에 따르면 정상인 뇌 전기회로도와 파킨슨병 환자의 뇌 전기회로도를 비교하면 금방 회로의 이상 유무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병의 조기 발견이 가능하다. 또 파킨슨병 뇌 회로도가 만들어짐에 따라 뇌에 전기자극을 줘 증상을 완화하는 뇌심부자극술을 이용한 치료도 보다 정밀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교수는 “파킨슨병의 경우 병원에서 뇌심부자극술을 통한 치료가 진행되고 있으나 정확한 부위와 동작 원리를 몰라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면서 “뇌 회로도를 바탕으로 문제가 되는 부위를 정확하게 찾아내 그 부위에 뇌심부자극술 치료를 하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현재는 파킨슨병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혈액검사나 뇌영상 기술이 없다. 게다가 파킨슨병은 증상이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파킨슨병의 대표적 증상인 이상한 행동자세를 치매 증상으로 착각해 환자가 치매약을 복용하기도 한다.
이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불치병인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면서 “장기적으로는 모든 뇌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뇌 회로도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파킨슨병뿐만 아니라 알츠하이머성 치매 등의 치료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다 정확한 위치에서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는 뇌세포를 찾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한양대병원 신경과 김승현 교수는 “뇌 회로도를 만드는 일명 ‘뇌 매핑’은 파킨슨병뿐만 아니라 루게릭병, 알츠하이머성 치매도 비슷한 뇌신경계 질환인 만큼 관련 진단과 치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파킨슨병 유발 단백질 ‘정밀 타격’
국내외 파킨슨병 치료법 연구는 주로 뇌 신경세포의 소실을 막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충북대 의대 연구팀은 지난해 말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특정 단백질이 줄어들면서 파킨슨병이 시작된다는 점에 착안해 해당 단백질을 직접 실험용 쥐의 뇌에 주사하는 방식으로 파킨슨병 증상을 완화하는 데 성공했다. 포스텍은 반대로 신경세포를 파괴하는 단백질의 상호작용을 억제하는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파킨슨병을 초래하는 뇌 속 인자를 ‘정밀타격’한다는 점은 같다.
파킨슨병 의심 환자의 손발 동작, 떨림, 근육의 긴장도 등을 정밀 분석해 발병 위험과 진행도를 파악하는 기술도 개발이 한창이다. 현재는 걸음걸이를 육안으로 관찰해 초기 파킨슨병을 진단하는데 환자마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달라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단은 이를 위해 피부에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전자소자 패치를 개발한 상태이고, 인텔은 파킨슨병 환자의 신체 활동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국내 의료용 인공지능(AI) 개발업체 마이다이스아이티는 두뇌 자기공명영상(MRI)을 통해 치매뿐 아니라 파킨슨병까지 조기 진단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 세계 최고 수준 유병률 과제
성균관대 의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파킨슨병 2007년 유병률은 국내 65세 노인 인구 10만 명당 환자 수 2060∼2993명으로 추정돼 세계 최고 수준이다. 더구나 세계 최고의 고령화 속도로 노인 인구가 급속히 늘면서 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파킨슨병은 미국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와 중국 개혁 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鄧小平)이 걸려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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