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에서 3시간을 대기하고도 의사에게 무엇 하나 제대로 묻지 못한 채 3분 만에 눈치만 보며 쫓겨나다시피 진료실을 나서야 하는 관행이 개선될 수 있을까. 서울대병원이 환자당 평균 진료시간 3분을 5배로 늘려 ‘15분 진료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서울대병원은 9월부터 11개 과(科)에서 초진환자를 대상으로 ‘15분 진료 보기’를 1년 동안 시범적으로 시행하겠다고 19일 밝혔다. 지금까지 진료 교수가 개인 의지로 진료 시간을 늘린 적은 있지만 병원이 직접 15분 진료를 공식화한 것은 국내 종합병원 가운데 처음이다. 하루 외래 환자 수가 9000∼1만 명 정도 되는 종합병원의 평균 진료 시간은 현재 3분이다.
15분 진료 보기를 시범 실시하는 과는 호흡기내과 내분비내과 알레르기내과 신경외과 유방외과 피부과 산부인과 소아정형외과 소아청소년과(신경) 소아청소년과(심장) 소아청소년과(신장) 등 11개 과다. 성인 환자뿐 아니라 소아 환자의 진료 시간을 늘리기로 한 점이 눈에 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초진환자 진료 시 시간당 환자 3명을 넘지 않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진료하겠다”며 “소아과는 특히 희귀 난치성 환아가 많아 외래에서 더 오랫동안 진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의사가 차분하게 오래 진료하면 환자 정보를 더 많이 알 수 있어 그만큼 불필요한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환자는 진료비까지 아낄 수 있는 셈이다.
서울대병원은 1년간 시범사업 이후 내부 평가를 통해 어린이병원과 내과, 외과 등으로 ‘15분 진료’를 확대할 예정이다. 특히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아산병원 등 다른 종합병원도 서울대병원의 실험에 큰 관심을 갖고 있어 이들 병원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윤도흠 연세대 의료원장은 “15분 진료는 참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며 “종합병원이 경증 외래 환자로 수익을 내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만약 수가만 제대로 책정된다면 우리 병원도 15분 진료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의 ‘15분 진료 실험’의 수혜 환자는 시범 실시 기간 하루 50여 명으로 예측된다. 서울대병원을 찾는 전체 초진환자 500여 명 중 15분 진료에 참여하는 11개 과의 환자는 약 10%다.
이 병원에서 2년 반 동안 본인 의지로 매주 목요일 오후 환자 1인당 15분 진료를 시행하고 있는 호흡기내과 임재준 교수는 “환자의 병력이나 기존 검사 이력, 영상검사 결과 등을 살펴보고 신체 검진과 청진을 하는 등 기본 진찰만 해도 15분이 금방 지나가지만 환자 대부분 만족해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의 내부 자료에 따르면 15분 진료 환자들의 평균 진료비는 15만6272원(검사비 7만8919원 포함)이었다. 반면 진료시간이 짧은 환자들의 평균 진료비는 20만4005원(검사비 16만1866원)으로 15분 진료 환자보다 검사비로 두 배 이상을 썼다.
다만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진료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의료 수가도 이에 맞춰 올려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3분 진료 시 수가는 2만6700원으로, 이 중 환자가 1만8000원에서 2만 원가량을 부담한다. 15분 진료 시 예상 수가는 9만3000원 정도다. 진료시간이 늘어도 부담률을 크게 낮춰 환자가 실제 내는 비용은 지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할 가능성이 크다. 보건복지부는 관계 부처와 협의를 거친 뒤 다음 달 예정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최종 수가를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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