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구경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싸움 중에서도 가장 큰 싸움인 전쟁은 더할 나위 없는 구경거리다. 걸프전이 CNN을 통해 생생하게 중계될 때 그건 스포츠 중계와 다를 게 별로 없었다. 이라크만 빼고 모든 나라 사람들이 TV 앞에서 열광했다.
그런데 첨단 무기로 이리 번쩍 저리 번쩍하는 걸프전은 왠지 현실감이 없었다. 총칼을 들고 사람끼리 직접 부딪히는 않는 전쟁은 스타크래프트 TV 중계나 똑같았다.
저그나 프로토스의 모습을 보면 현실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폭력은 넘쳐나지만 절박하지 않다. 저글링 러쉬보다 동네 건달이 휘두르는 재크 나이프가 훨씬 폭력적이다.
하지만 ‘팬저 제너럴’ 같은 게임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 게임은 2차 세계 대전을 소재로 한 전쟁 게임이다. 많은 전쟁 게임 중에서도 최고의 명작이라고 불리는 ‘팬저 제네럴’은 턴 방식 게임이다.
6각형 헥사형 맵에서 유닛을 장기 두듯 움직여 적과 싸운다. 물론 무작정 움직이면 안되고 주위 상황, 예상 피해 정도, 기후와 보급 상황까지 많은 것들을 따지면서 진행해야 한다. 머리를 무척 써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최근 출시된 ‘서든 스트라이크’도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나왔던 게임들과는 달리 실시간이다. 그래서 많은 것이 달라진다. 치밀한 계산보다는 빠른 판단, 수비와 공격 사이의 전환점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
턴 방식에서는 계산과 분석이 우선이기 때문에 2차 대전의 역사성과 실제 존재하는 무기들에도 불구하고 현실감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실시간에서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야 한다. 계산이고 뭐고 할 시간 따윈 없다. 무조건 몰아치고 본능적으로 받아쳐야 한다.
턴 방식일 때는 유닛 하나도 소홀하게 다루면 안된다. 하지만 실시간에선 개별 유닛은 중요하지 않고 한 부대가 돼야 의미가 있다. 유닛이 한 두 개 파괴되도 새로 생산해서 머리 수만 맞추면 된다. 전쟁은 이런 것이다. 작전실에서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라 실제 전장에 뛰어들었다면 그렇다.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모두 부순다. 파괴된 빌딩과 거리에서 살고 있었을 사람 생각을 할 필요는 물론 없다. 아군의 희생이 아무리 크더라도 적보다 덜 죽기만 하면된다.
턴 방식 게임에서는 공격하기 직전 내 유닛과 적의 유닛의 능력을 비교하고 개죽음당하는 게 아닌가 망설이는 경험이 있다. 실시간에는 이런 주저함이 없다.
격렬함은 더해지고, 죄의식은 사라진다. 전쟁은 놀이가 된다. 굉장히 재미있다. 물론 게임이 폭력에 대한 욕구를 새롭게 만드는 건 아니다. 이미 존재하던 걸 부추기고 드러낼 뿐이다. 게임 때문에 전쟁이 생긴 게 아니라 전쟁 때문에 게임이 생겼다.
(게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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