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논’은 98년에 나온 일본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이런 게임들이 다 그렇듯이 대단히 작위적이고 민망한 사랑 이야기다.
주인공인 나는 7년이나 등지고 지냈던 고향 마을로 돌아와 어릴 적 소꿉친구 ‘아유’를 다시 만난다. 아유는 붕어빵 같은 걸 좋아하고 툭하면 넘어지기나 하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여고생이다.
그런데 그녀는 소중한 걸 잃어버렸다. 언제 잃어버렸는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걸 찾기 위해 둘은 거리를 헤매고 다닌다. 고향에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믿고 7년이나 기다린 아유를 위해서다.
그러다 아유는 내가 어렸을 때 선물한 조그만 천사 인형이 그녀에게 소중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다. 그 인형은 병에 담아 나무 밑에 묻어 놓았었다.
하지만 파낸 병은 깨져 있고 인형도 어느 사이 망가져 있다. 그리고 그 순간 나 역시 모든 기억이 되살아난다.
사실 모든 걸 잊어버린 게 아니라 일부러 기억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소중한 걸 잃은 건 아유가 아니라 나였다.
아유는 내가 마을을 떠나기 전 날 나무에서 떨어져 숨을 거뒀다. 7년만에 돌아와 만난 아유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은 건, 아유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모두 내 마음의 알량한 평화를 위해서였다. 나는 스스로가 만든 환상이 깨진 후에야 마지막 약속을 지킬 용기를 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거기 있었다. 7년이란 시간 동안 언젠가는 올 나를 생각하며 추억의 나무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세상에 없는 그녀는 마침내 지켜진 약속에 마지막 웃음을 지으면서 떠나간다.
‘카논’은 이렇게 유치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그 유치함을 거리낌없이 비웃을 수가 없다. 오래 전 약속이 있었고,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이 믿음은 기적을 가져왔다. 모든 걸 빛바래게 하고 잊혀지게 하는 일상에서 사랑이 되살아나고 약속이 지켜졌다. 모든 사랑이 죽은 자를 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랑은 모두 기적이다. 기적이 사라진 시대에 사랑은 아직도 남아 있다. 우리는 그 유치함에 몸을 떨고 마음 아파한다.
(게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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