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평론]'원숭이 섬' 소시민이 주는 행복한 웃음

  • 입력 2001년 3월 5일 11시 40분


웃음은 놀라운 축복이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자기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다른 엔터테인먼트와 마찬가지로 게임에도 웃음을 적절하게 섞어넣는게 중요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심각하면 사람들이 힘들어한다. 그런데 행복한 웃음은 찾기 어렵다. 저질 코미디처럼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게임도 있다.

‘루카스 아츠’가 만든 ‘원숭이섬’ 시리즈는 행복하고 느긋한 웃음을 주는 게임이다. ‘루카스 아츠’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 ‘스타워즈’를 만든 감독 조지 루카스의 회사. ‘원숭이 섬’을 비롯해 ‘루카스 아츠’의 또다른 게임인 ‘디그’ ‘매니악 맨션’도 팍팍한 일상에서 한줄기 바람 같은 웃음을 준다.

‘원숭이 섬’ 시리즈는 10년동안 4편까지 나온 어드벤처 게임. 이 게임에는 화려한 액션이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스릴, 화려한 주인공의 카리스마 같은 건 없다. 대신 입담 좋은 멍청한 소시민 ‘가이브러쉬’와 그에 못지않은 등장 인물들이 펼치는 신랄하고 경쾌한 이야기가 있다.

가이브러쉬는 해적이 되겠다는 당돌한 꿈을 가지고 있다. 그의 꿈이 실현되는 과정은 범상치 않다. 말로 하는 칼싸움에 누가 침을 잘 뱉나 내기, 풍선껌으로 금이빨을 빼기 등으로 뭐 하나 특출난 게 없는 가이브러쉬는 결국 해적으로 대출세한다. 그리고 여러모로 가이브러쉬와 대조적인 멋진 여장부 ‘일레인’의 사랑까지 얻는다.

‘원숭이 섬’은 굉장히 웃기는 게임이다. 가이브러쉬는 악한 심성을 가진 존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루하고 비현실적인 성인군자도 아니다. 그가 보여주는 유머는 소박하다. 부부동반으로 항해에 나갔다가 오랜만에 돌아오니 어찌된 일인지 멀쩡히 살아있는 일레인이 죽은 걸로 되어있고 재산까지 경매에 붙여져 있다. 하지만 자기가 죽은 걸로 되어있는 게 아니니 그게 우선 기쁘다. 자기 재산은 자기 명의로 되어 있는 것에도 부인 몰래 안도한다.

남 앞에선 온갖 큰소리를 다 치지만 사실은 소심하고 자기 잇속을 계산하는 모습을 보면 밉지 않고 웃음부터 나온다.

‘원숭이 섬’ 시리즈는 평범한 사람이 속 좁게, 그리고 조금은 어리석게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어이없는 해프닝이다. 이 게임을 하다보면 느긋해진다. 레게 리듬의 유명한 주제가를 들으며 가이브러쉬가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가본 적도 없는 카리브해의 깊고 푸른 바다가 떠오른다.

(게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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