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琴東根 기자] 자연다큐는 NG가 없는 프로그램이다.
대본이 없어 「실수」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연다큐는 정해진 제작기간이 없다. 대상물이 PD의 연출의도와는 무관하게 「제멋대로」 행동하므로 PD는 원하는 장면을 포착할 때까지 무조건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
30일 방영된 「하늘다람쥐의 숲」과 31일(밤9.20) 방영되는 「한국의 쥐」를 만든 EBS 자연다큐 제작진은 두 프로를 만들기 위해 꼬박 1년간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같이 어렵게 제작했지만 방송되는 분량은 2편을 합해 고작 1백분.
이연규PD는 『1년간 제작을 하는 동안 「자연다큐에는 대가(大家)가 없다」는 선배의 말이 수시로 떠올랐다』고 말한다. 선배의 충고는 『무(無)에서 시작하라. 어떤 그림을 그리려고 하지 말고 그려질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고.
「기다림」의 고통 외에도 제작진이 겪은 고생은 말로 다 못한다. 지난해 1월 제작에 착수한 제작진이 집에서 편하게 잠을 청한 것은 석달 남짓. 산속에서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텐트 속에서 새우잠을 잔 날도 숱하다.
육체적으로 고통을 겪을 때도 많았다.
이PD와 조연출을 맡은 한상호PD는 다람쥐 둥지를 찾기 위해 하루에도 10차례 이상 나무를 오르내렸다. 이PD는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떨어져 어깨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을 하기도 했다. 제작팀 전원이 쥐벼룩 때문에 고생하기도 했다. 또 제작진은 유행성 출혈열을 예방하기 위해 두차례 예방주사를 맞고 제작에 임했다.
제작진을 가장 고생시킨 계절은 여름. 숲속에는 온갖 벌레가 들끓기 때문에 한여름 더위에도 긴 팔 옷을 입고 장갑을 낀 채 제작을 해야 했다.
그래도 카메라맨 이의호씨는 피부가 온통 다 헐어버릴 정도로 벌레에 물리기도 했다. 겨울에는 보통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위와 싸우며 숲속에서 밤을 지샜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보다 더 제작을 힘들게 한 것은 하늘다람쥐나 쥐에 대한 관련자료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이PD는 『서식지가 어디인지도 전혀 알지 못한 채 동물도감에 그려진 삽화만을 들고 전국을 헤매고 다녔다』고 밝혔다.
이PD는 『엄청나게 고생을 하긴 했지만 한 달간 산속을 뒤진 끝에 처음으로 하늘다람쥐와 마주쳤을 때의 감격은 평생 잊지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