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마주보기]임진왜란중에도 계속된 과거제도

  • 입력 1997년 10월 6일 20시 25분


임진왜란은 조선 개국이후 가장 큰 위기였다. 당시 임금인 선조는 전쟁 발발 2개월만에 평안도 의주까지 피란을 갔다. 함경도에서는 백성들이 임해군 등 두명의 왕자를 납치해 왜장에게 넘기는 사건이 일어났을 정도로 민심은 조정에 등을 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고시인 과거(科擧)는 중단되지 않았다.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도 과거는 거르지 않고 31차례나 실시됐다. 「TV조선왕조실록―다시 보는 임진왜란」의 평가에 따르면 이같은 특이한 행정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채 서울을 내주고 임금이 피란간 것에 대해 끓어오를대로 끓어오른 민심을 달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결정이었다. 과거는 인재 선발이라는 본래의 기능 외에도 정부의 존재를 백성에게 알리고 백성들을 의병으로 조직화하는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중앙정부의 역할을 대신한 분조(分朝)의 실시도 주목받고 있다. 분조는 왕이 있는 원래의 조정을 둔 채 권력을 위임받은 세자를 중심으로 국사의 실무를 담당하는 「이동 정부」. 선조는 둘째 아들 광해군을 중심으로 분조를 구성해 각지의 민심을 수습했다. 분조는 지방에서 과거를 실시하는가 하면 의병을 모집하는 등 정부의 기능을 수행했다. 과거장면의 실현과 함께 왜장에게 넘겨진 임해군 일행의 모습, 분조의 활약상 등을 드라마로 재현하고 임진왜란을 승리로 마무리한 요인들을 되짚어 본다. 〈김갑식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