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복제품이 판치는 시대. 남녀 간의 사랑도 진짜 같은 가짜가 있다면 어떨까. 겉치레 같은 사랑보다는 차라리 복제된, ‘짝퉁’ 사랑으로 대체되는 것이 인스턴트시대에 더 잘 어울리지는 않을까. 사랑이 주는 달콤함만 즐기고 책임이나 의무는 없는, 이런 사랑이 보다 편리하지는 않을까. 한편으론 결혼이라는 계약이 아니더라도 사람 사이의 사랑과 소통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사랑을 카피하다’(5월 5일 개봉)는 관객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는 영화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등 이란의 사회현실에 묵직한 시선을 보내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이례적으로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찍은 로맨스 영화다.
영국 작가 제임스 밀러(윌리엄 시멜)는 새 책 ‘기막힌 복제품’ 홍보를 위해 이탈리아를 방문한다. 독자와의 만남 자리에서 제임스는 열혈 팬 그녀(쥘리에트 비노슈)를 만난다.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그녀는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 제임스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 그녀는 하루 동안 시골로 드라이브를 하자고 제안한다. 상대에 대해 서서히 알아가던 이들은 레스토랑 주인의 오해를 장난스럽게 받아주다가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인 것처럼 대화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진짜 부부처럼 장난스러운 역할극을 시작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역할극은 점점 진지해져 진실과 거짓이 모호해진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며 점점 빠져든다. 그녀는 시골 레스토랑의 맛없는 와인에 투덜거리는 제임스에게 까다롭다고 핀잔을 주고, 예쁘게 보이려고 화장실에서 립스틱을 새로 바른 것도 몰라주자 화를 낸다. 신혼여행 때 묵었던 곳이라며 들른 여관에서 결혼 15주년 기념일 밤 어떻게 그냥 잠들 수가 있느냐며 눈물까지 흘린다.
진실과 거짓을 넘나드는 비노슈의 연기는 압권이다. 47세의 나이에도 투정부리고 소녀처럼 눈물짓는 모습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는 이 영화로 지난해 제63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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