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래비티’는 관객을 지루함에 빠뜨릴 요소가 많다. 단순한 줄거리부터 그렇다. 우주비행을 한 지 일주일 된 신참 우주인, 의료 공학 박사 라이언 스톤(샌드라 불럭)이 갑작스러운 재난을 당한 뒤 우주 미아가 돼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은 라이언 스톤과 베테랑 우주 비행사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단 두 명. 그마저도 대부분의 시간은 육중한 우주복을 입고 있는 터라 목소리와 숨소리 정도로만 감정이 전달된다. 우주를 배경으로 삼았지만 신비로운 외계인도,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도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야기 대신 영상과 연출력으로 승부한다. 주인공이 사투를 벌이는 대상은 우주 공간의 무중력 상황 그 자체다. 600km 상공 위의 우주 공간은 유영을 하면서 ‘갠지스 강 위의 태양을 바라볼 수 있는’ 낭만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인공위성의 잔해가 언제든 대재앙을 촉발할 수 있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자신의 의지대로 몸조차 가누기 어려운 상황은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그래비티(영어로 ‘중력’)가 무중력 상태를 재현한 장면은 놀랍다. 91분의 상영시간 동안 여러 차례 ‘저걸 대체 어떻게 찍었지’ 질문을 거듭하게 된다. 영화 ‘위대한 유산’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칠드런 오브 맨’을 연출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카메라를 우주로 들고 가서 찍은 것 같은’ 현실적인 표현에 집중했다. 첨단 컴퓨터 그래픽도 동원했지만 등장인물이 유영하는 일부 장면을 위해 12개의 줄로 이뤄진 특수장치도 개발했다.
그래비티는 3차원(3D)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쾌감을 잘 살린 작품이기도 하다. 무중력 상태에서 둥둥 떠다니는 눈물방울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특히 중간 편집 없이 롱 테이크로 잡아낸 극 초반 20분이 백미다. 우주 공간의 모습을 원경으로 잡던 카메라는 점차 주인공 쪽으로 다가가 극도의 클로즈업으로 그의 얼굴을 비추더니, 나중에는 그가 쓰고 있는 헬멧 안에 들어가 바깥을 내다보는 듯한 장면을 보여준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샌드라 불럭은 절망의 상황에서 삶의 의지를 되찾는 주인공 스톤 역을 맡아 실감나는 우주 액션과 섬세한 내면 연기를 함께 보여줬다. 컨트리 음악을 즐기며 중저음의 목소리로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코왈스키 역의 조지 클루니는 적막한 우주 공간에 낭만을 심어주는 존재다.
무중력 생활에 호기심을 품었던 관객이라면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 듯하다. 생생한 묘사 덕에 영화관을 나온 직후엔 지구의 중력으로 인한 약간의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니까.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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